로버트 로플린 총장의 ‘사립화 구상’을 둘러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내부 갈등이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수회와 학생회의 내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지난해 말 기획처장을 사퇴한 박오옥 교수의 비판 이메일이 공개됐다.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48명 전원이 3일 로플린 총장에게 전한 연판장과 비슷한 내용이다. "축구 발전을 위해 히딩크 감독을 모셨더니, 축구 인기가 없다고 종목을 야구로 바꾸려는 식"이라는 요지다.
로플린 총장의 구상은 현재 2,900여명인 학부생을 2만명, 연 80만원 정도인 등록금을 600만원 정도로 늘리고, 학부에 의대·법대·경영대학원 진학반을 두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예산의 80% 이상이던 정부 지원금이 30%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시급한 과제는 재정 확보이고, 사립종합대로 전환해 대응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의 예도 있어 나올 수 있는 구상이지만 구체적 현실과 동떨어졌다. KAIST의 체제 변화는 관련 특별법 개정을 필요로 하며, 대학의 재정 불안이 심각해 통폐합으로 가는 사회적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과기 저력 배양이란 설립 목적을 가진 KAIST의 정체성도 따져야 한다. 포항공대 수준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정부 지원을 늘리는 등 다른 재정적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로플린 총장 선임에 국민이 보낸 환호의 내용을 되새겨야 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그는 KAIST를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끌어올릴 간판으로 기대를 모았지, 대학체제 개편의 적임자일 수는 없다.
따라서 KAIST 발전에 도움이 되긴커녕 연구 의욕만 꺾고 있는 비본질적 논란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그 논란을 조기에 끝낼 책임이 어디까지나 정부에 있는 것 또한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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