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경기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열린 본부노조 긴급대의원회의. "죄송하다"는 말로 머리를 조아린 박홍귀 노조위원장은 반성과 사죄를 담은 ‘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채용비리의 발단이 된 광주공장 생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언급이었다.
"1,079명의 신규 입사자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는 소제목까지 단 사과문에서 그는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노동을 하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과정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감싸 안아주어야 할 포용의 시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채용비리 사건이 터진 20일 사퇴 성명서에서는 "생산계약직 중 단 한명에게라도 어떠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은근한 경고메시지를 담았다.
이들 상당수가 돈과 ‘빽’으로 사원명찰을 달았다 하더라도 노사간 구조화된 채용비리 커넥션에 어쩔 수 없이 연루된 희생자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성명서나 사과문 내용 어디를 들여다 봐도 ‘들러리’로 전락시킨 ‘진짜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예정된 채용자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입사의 부푼 꿈을 꿨던 수 만 명의 탈락자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기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천만원의 돈도 없고, 지역 유지나 정치인, 심지어 노조 ‘빽’ 마저 없어 몸뚱이만 믿고 지원한 이들과 가족들이 이번 비리로 느꼈을 울분과 좌절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이미 취업한 직원들의 보호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는 노조위원장의 반성이 와 닿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과의 대상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무슨 ‘국민 사과문’인가.
정진황 사회부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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