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숲을 보면 다 같은 나무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큰 나무와 작은 나무, 활엽수와 상록수가 한 데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학생들도 외면상으로는 대동소이하지만 능력과 적성은 학생마다 다르다. 이렇듯 서로 다른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을 계발하여 신장시키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몫이다. 수학이나 과학, 예술과 같이 선명하게 차이가 두드러지는 영역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작년 12월 22일 발표한 ‘수월성 교육 종합 대책’은 퍽 의미가 있다.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43개 국 학업 성취도 국제 비교(PISA)에서 한국은 수학 2? 과학 1위의 성적을 거뒀지만 상위 5%는 수학, 과학이 각각 6, 5위였다.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부진하다는 결론이다. 2003년 실시한 40개 국 PISA의 결과는 수학, 과학이 3, 4위인데 상위 5%는 3, 2위였다. 2000년보다 상위권 학생은 좀 나아진 편이다.
그나마 성적이 앞선 것은 ‘과학적 현상 이론’ ‘설명’ 등의 분야이며 ‘과학적 탐구 이해’ ‘증거 및 결론 해석하기’ 등 과학적 탐구 기능까지는 아우르지 못했다.
특히 학습 흥미도 평가 영역에서 ‘흥미’와 ‘학습 동기’ 부분은 한국이 각각 31위, 38위로 최하위였다. 동기 부여가 되어 있지 않고 흥미가 없다는 것은 과학 교육에 적신호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과학에 흥미를 느껴 스스로 학습하기보다는 ‘시키기 때문에 억지로’ 공부하다 보니 시험만 지나면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국제학력비교평가(IEA) 결과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우리 학생들의 우수한 성적은 학교 시설이나 학급 당 학생수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선생님들의 열정’에서 나왔다고 보고하고 있다.
자루 속에 있는 송곳이 불거져 나오듯이 능력이 있는 과학도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면 제도권에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을 열정이 있는 교사가 조직화된 프로그램으로 교육할 때 그 효과는 클 것이다.
영재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월성 교육을 시키고, 수준별 이동 수업과 트래킹(Tracking) 제도(특정 과목에 몇 개의 과정을 만들어 놓고 학생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교과목을 이수토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몫이다. 이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 한 명이 수십만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조성해 주자. 이공계 기피현상이 이공계 선호 현상으로 바뀌도록 유인 체제를 세우자. 평등 체제를 유지하되 그 속에서 수월성 교육을 통하여 대학 교육까지 연계하는 국가 시스템을 차제에 만들어 보자.
199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스탠포드대의 테일러 박사는 어학에 소질이 없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과학에 남다른 흥미와 호기심이 있음을 눈여겨본 앨버터대에서 조건부 입학을 시켜 오늘의 그가 있게 되었다. 창의력이 샘 솟는 인재, 수월성이 뛰어난 학생이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먼 훗날 우리에게 ‘나비 효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정완호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장 전 한국교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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