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05 희망을 쏜다] (5·끝) 여성 산악인 오은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05 희망을 쏜다] (5·끝) 여성 산악인 오은선

입력
2005.01.26 00:00
0 0

한국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오은선(39·영원무역)씨는 산 정상에서 제대로 만세 한번 외쳐본 적 없다.

"정상에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인데요, 생각처럼 그리 큰 희열은 못 느껴요. 등정의 끝이 아니라 반환점에 불과하니까요. 무사히 내려가야 비로소 웃을 수 있어요. 그래도 탁 트인 자연을 가슴 가득 담아오는 건 절대 안 잊죠."

2002년 여름 유럽의 엘브루즈(5,642m)를 오르면서 그의 험난한 7대륙 최고봉 도전은 시작된다. 이후 2003년 북미의 매킨리(6,194m), 2004년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호주의 코지어스코(2,228m)까지 속속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다. 12월20일(한국시각) 도전의 종착지인 남극의 빈슨매시프(4,897m) 꼭대기에서 그는 입 주위에 두 손을 모았다. "제 인생의 큰 목표를 이룬 거잖아요. 힘껏 만세를 불렀는데 목이 건조해서 소리가 잘 안 나오데요. 멋지게 폼 한번 잡으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때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를 보고 산에 매료된 오은선씨는 1985년 수원대에 입학하자마자 산악부를 찾아갔다. 그는 산악인 박영석씨의 14좌 완등 도전에 대원으로 참가하면서 7대륙 최고봉 정복을 꿈꿨다. "2001년 K2에 함께 올랐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지금껏 뭘 했나.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나…."

그의 2004년 등정 레이스는 숨가쁘다. 무려 다섯 곳을 정복했다. 돈 때문이었단다. "이름없는 산악인에게 어느 기업이 후원하겠어요. 얇은 지갑으론 비행기 삯도 감당 못해요. 지명도 있을 때 기업 도움 받아 빨리 끝내고 싶었죠." 물론 155cm의 왜소한 그가 강풍과 눈보라 속으로 선뜻 뛰어든 건 돈보다는 산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열정은 후회를 부르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오씨는 앞서 가던 대구 계명대 등반대원 3명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하산과 등정의 갈래 길에서 고민하다 계속 오르기로 결정했다. "구조를 떠나는 대원들에게 세르파 1명을 딸려 보내고, 제 생명과도 같은 산소통도 줬어요."

그런데 아뿔싸. 등정 길에 오씨는 싸늘하게 식은 동료의 시신을 보고 말았다. 귀로 들은 비보는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정작 눈으로 본 비극은 가슴을 후벼 팠다. 극도의 공포감. "그 때부턴 다른 생각 안 났어요.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것 뿐." 무작정 올랐다. 마침내 정상. 5분도 머무르지 않았다. 등정의 증거만 남기고 서둘러 내려갔다. 그는 이후 약 3개월 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단다. "산에 왜 오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 때마다 산은 제 삶이라고 답하죠. 처음엔 부모님이 배낭도 내다 버리고 무척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전 끄떡없었죠. 산은 제 인생이니까요." 산에 파묻혀 살다 보니 결혼을 못했다는 그의 새해 목표는 남태평양의 고도인 이리안 자야의 칼스텐츠(4,884m) 정복. "당장 등반 허가만 나면 떠나야죠." 그의 꿈은 저 높은 곳을 향해 쉼 없이 힘차게 고동치고 있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