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금을 변제하지 않을 경우 본인에 대한 현상수배, 친지 및 가족 면담 등 인권침해 행동을 감수할 것을 약속합니다."
유흥업소 업주가 선불금을 빌미로 성매매 여성들을 옭아매기 위해 받아놓은 각서(사진) 중 일부다. 각서 제목은 ‘인권침해 및 현상수배 동의서’다. 경기경찰청 여경기동수사대는 25일 경기 양평군에 J유흥주점을 차려놓고 2001년부터 성매매를 알선해 온 업주 김모(45·여)씨 등 3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여성들의 업소 이탈 등을 막기 위해 각종 형태의 각서를 요구했다. 성매매 여성 등 91명으로부터 받은 각서는 인권침해 및 현상수배 동의서를 비롯해 선불금 이행각서, 위임장, 차용증 등 모두 382장에 달한다.
각서에는 "선불금으로 본인의 어려운 생활여건에 도움을 주신 업주님께 감사드리며 위 금액을 상환하지 않고 무단으로 이동할 경우 업주님께서 취업사기로 고소를 해도 인정하며 법의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씨는 또 "업소에서 윤락을 강요할 시에는 관서에 바로 신고할 것이며 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여성들에게 요구, 경찰에 단속될 경우를 대비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업주들이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황당한 각서들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이번처럼 ‘인권침해나 현상수배를 해도 좋다’는 내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같은 각서를 빌미로 업소를 탈출한 여성들을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2003년 10월 업소에 들어온 이모(24)씨의 경우 성매매 강요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2월 업소를 탈출했지만 집에서도 업주의 계속된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500만원이던 선불금은 결근비 등 각종 벌금으로 몇 개월 만에 1,300만원으로 불어났고 이 때문에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지난해 4월 윤락행위방지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의 처벌을 받은 뒤에도 사업자 명의를 바꿔 계속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이씨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김씨를 성매매 알선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뒤 피해여성 등을 상대로 김씨가 여성들을 집창촌 등으로 인신매매했는지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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