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 입시는 수능 시험장에서의 집단 부정행위와 교육부총리의 도중하차 등으로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했다. 특히 수시모집 전형 과정에서 서울의 유수 대학이 고등학교 간 내신 성적 적용에 차등을 두는 한국판 ‘고교 등급제’를 실시해 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지역과 학교별로 현실적인 학력차가 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일부 대학 입시 관계자들은 내신 성적의 차등 적용을 금지한 정부 방침에 반발해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유라는 대원칙으로 맞서기도 하였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이며 기관이다. 이러한 대학 본연의 설립 목적은 대학이 국가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만이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대학의 자유는 대학이 연구와 교육을 통하여 창조적 가치를 생산하며 균형 잡힌 인성과 교양을 지닌 인재를 길러낸다는 전제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이러한 대학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는 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몇몇 대학은 고등학교 간 현실적인 학력 차이를 입학 전형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차이를 내신 적용에까지 반영하면 사교육으로 야기된 왜곡된 결과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격이 된다. 결국 사교육이 공식화되고 그 폐해가 더욱 심화되는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대학 교육을 통하여 얼마나 창조적인 지식인이 될 수 있고 사회에 공헌하는 건실한 교양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은 결코 이러한 근시안적 관점으로는 발견될 수 없다. 인간배아 복제 실험 성공의 결정적인 공헌자는 지방 사립대 출신의 젊은 여성 연구자였다고 황우석 서울대 교수도 밝힌 바 있다. 만약 황 교수가 잠재력을 보지 않고 대학 입시 성적에만 의존하여 그를 평가했다면 세계가 경탄하는 과학적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교 등급제 같은 논리를 확대하면 장애인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정상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우리 사회에서 합의한 공리이며 연구와 교육의 최고 기관인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우선적으로 견지해야 할 기준이다. 기술적으로도 모든 학교의 학력차를 검증하고 계량화할 방법은 없다. 대학은 시험에서 드러나는 단순한 학력 차이의 신화에 의지하기보다 다양한 선발 방법을 개발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을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
대학의 자유는 공권력에 대한 학문 연구와 교육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당대 사회의 규범과 공동의 가치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대학은 대학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적·역사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 대학에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이미 제도화되고 있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개선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정하게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고교 등급제 예찬론자들은 미국의 예를 종종 든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열과 넓은 교육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의 재정이 안정되어 있고 명문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적인 공헌을 많이 하여 대학의 권위가 확립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이민사회가 가진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의 교육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고등교육의 이상은 인성 계발과 사회통합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일부의 혜택받는 사람들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고교 등급제를 다시는 실행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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