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연극은 실험성과 많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실험과 상징들은 시대의 고통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이 땅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왔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이 마련한 ‘베스트 앤 퍼스트’ 시리즈의 ‘베스트’ 첫번째 주자로 막을 올린 신작 ‘만파식적’도 예외는 아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파식적’은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진리를 통해 이 땅의 화해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이끄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라고 말한다.
종수는 어머니의 석관 곁에 빈 석관을 마련하고 납북된 아버지를 모실 것을 약속한다. 뗏목으로 두만강을 건너 북한 함경남도 나남에 도착한 그는 92세의 부친과 상봉한다. 이복 동생湧?처음 대면한 형이 아버지를 모셔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남한의 불우한 현실 때문에 주저한다.
마치 자료화면처럼 북한 이복 동생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의 현실은 쓸쓸하고 암울하다. 농촌 마을 절반은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노숙자들은 개들과 함께 먹는 한 끼 국밥에 감사한다. 쓰레기통에서 주운 복어 알로 식사를 하다가 일가족이 떼죽음을 당하고, 국적을 포기하겠다며 눈물 짓는 위안부 할머니들 지척에는 ‘588’ 아가씨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친다.
이들 에피소드를 통해 극은 북한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우리들 물질적 풍요의 허구를 고발하고, 북한의 배고픔과 저개발만 지적하는 남한의 편협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남한 주민들이 ‘미군 군화에 짓밟혀 상가의 개처럼 삶을 연명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우산 하나 제대로 없는 자신들의 남루한 현실에는 눈을 감는 북한의 인식을 꼬집는다. 그리고 지하철 우산 돌려주기 운동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알아채지 못하면서 자기 것만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짚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작은 실천이 분단 극복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소박해보이면서 다소 투박한 무대 디자인과 소품들은 대극장 무대를 채우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듯 하지만, 역사적 판타지와 분단 현실을 충돌시켜 만들어내는 큰 울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북과 장구, 꽹과리가 어우러져 펼쳐지는 전통연희가 우리 것의 신명을 보여주고,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는 김유신과 문무왕의 모습을 그려 분단의 아픔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외세의 위협을 묘사하기도 한다.
피리 ‘만파식적’의 변주라 할 수 있는 종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북청사자춤은 분열과 반목의 종언에 대한 소망이 담긴 이번 무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서 2월12일까지. (02)745-3966.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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