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약세-원화절상’은 올해 우리 경제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암초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 원화절상은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화절상=독(毒)’ 이라는 일방적인 등식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원화절상은 수출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물가 안정과 내수 진작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하는 구조조정 효과도 있습니다. 위기지만 기회이기도 한 원화절상의 파급 매커니즘을 살펴보도록 하죠.
◆ 부정적 효과 = 원화가 절상되면 수출품의 외화표시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출이 감소합니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떨어지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예전에 1달러만 주면 2,000원짜리 제품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2달러를 줘야 합니다. 우리 기업이 원화절상분을 수출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품의 원화표시 가격은 내립니다. 2,000원을 주고 사야 했던 제품을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원화절상은 ‘수출감소-수입증대’를 유발,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게 됩니다.
물론 수출과 환율의 상관관계가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세계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아진 거죠. 그러나 이는 몇몇 우량 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중소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의 세계경쟁력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서 나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 긍정적 효과 = 우선 물가안정을 통한 내수 진작입니다. 수입품 가격이 하락하고, 이를 원료로 쓰는 소비재 가격이 떨어지면 우리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이 증가합니다. 같은 소득으로 이전보다 살 수 있는 물건이 더 많아지는 거죠.
또 기업 입장에서도 자본재나 원자재 수입 비용이 감소하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고, 외화부채 상환 부담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화 환율이 10% 절상되면 설비투자는 1년간 3.8%포인트, 민간소비는 1.0%포인트 증가한다고 합니다.
물론 원화절상으로 수출둔화가 큰 폭으로 이뤄지면 내수에 대한 긍정적 효과는 상쇄됩니다. 수출이 줄어들면 투자수요가 위축되고, 기업 영업이익 감소로 실제 수출 여력도 감소합니다. 기업 실적 악화는 근로자들의 소득 둔화로, 다시 소비 둔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원화절상이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물가 하락에 따른 내수 증가효과’(가격효과)와 ‘수출 부진에 따른 내수 감소효과’(소득효과)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 결정이 되겠죠.
◆ 위기이자 기회 = 현재 원화절상 속도로 미뤄볼 때, 올해 환율이 수출 소비 투자 등 경제 전반에 미칠 종합적인 영향은 부정적 측면이 더 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원화절상은 단기 경제성과에 대한 영향 말고도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또 하나의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 하나로 버텨온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들게 됩니다.
대기업들도 제품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립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게 되겠죠. 냉정하게 말하면, 환율 때문에 망하는 기업은 어차피 중국에 밀려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런 기업들은 한정된 국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유망한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90년대 엔고를 맞은 일본 기업들이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오히려 수출가격을 올리면서 수출을 늘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충격 완화 차원에서 정부의 환율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원화절상은 구조조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데 더 주목해야 합니다.환율 1,000원은 한국 경제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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