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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 전 대통령의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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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 전 대통령의 ‘광화문’

입력
2005.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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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남쪽 정문인 광화문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엄정한 위엄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그 위엄은 역사적 수난과 오욕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다. 숱한 오욕과 이를 떨쳐 버리기 위한 미학적 안간힘이 지금의 광화문을 버티고 있다. ‘죄 없는 단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 불리는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이렇게 절규한 바 있다. '광화문은 건축학상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조선의 대표적 건물인데, 총독부를 짓기 위해서 그것을 헐어 버린다니 될 말인가?…>

■ 광화문은 1399년에 세워져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대원군이 중건한 것을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짓기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다시 6·25 때 폭격으로 불타 없어지자 1968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1960~70년대 세종로 일대에는 상징성이 큰 세 개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이 그것이다. 온 국민이 추앙하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을 기념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은 광화문에 자신의 한글 글씨 ‘광화문’을 현판으로 내걸었다.

■ 사범학교를 나온 박정희씨는 시서화(詩書畵)에서도 재능을 보여 주었다. 충무공을 소재로 한 시와 남산을 그린 유화 등이 공개된 적도 있으나, 정치가는 서예 쪽에 좀더 진력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런 문화전통은 김영삼 김대중씨에게도 이어진다. 박정희씨의 ‘광화문’ 현판 글씨는 어떤가. 서법 상 어느 계통에 충실한 글씨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수준의 글씨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개성과 고집이 느껴지는 대신 애써 통속적 재주를 드러내려는 속기(俗氣)가 없는, 일정한 수준을 갖춘 아마추어 글씨로 보인다.

■ 박정희씨의 ‘광화문’ 글씨가 조선 시대의 명필인 정조의 글씨로 바뀌는 작업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박정희씨의 ‘광화문’이 역대 현판들처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쓰여지지 않은 점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보다는 그의 아마추어적 글씨 수준과 정치적 평가가 엇갈리는 점 등이 작용했을 듯하다. 아쉬운 면도 있지만, 한 시대의 권력자와 대표적 문화재가 결별할 때인 것 같다. 미술사에는 ‘제화공은 구두에 대해서만 발언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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