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는 IT혁명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1990년대 미국에서 호황이 계속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 경제 현상이 오래가지 못한 채 다시 불황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직도 ‘마르크스의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멸망론, 즉 공황론은 ‘자본주의에는 근본적으로 이윤율이 자꾸 떨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윤율이 떨어지다 보면 자본(돈)이 더 이상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게 돼 투자 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이어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노동자들의 소득도 줄고 소비도 감소한다는 겁니다.
투자 자본에 대한 이윤의 비율인 이윤율은 ‘이윤/투자자본’이고, 이를 간단하게 변형하면 ‘(매출당 이윤)×(자본 생산성)×(조업률)?이라는 세가지 변수의 곱으로 표시됩니다. 결국 이윤율 하락은 마진, 즉 매출당 이윤이 떨어지거나, 자본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조업율이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불황은 이 세가지 요인이 겹쳐 나타나지만 주요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낮은 자본 생산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자본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투자가 위기의 한 원인이었고, 이는 바로 낮은 자본 생산성의 문제였죠.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원천이기에 노동을 대체하려는 기계화는 결국 새로운 가치 원천의 기반을 줄이게 되고,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 생산성을 떨어뜨려 이윤율 저하를 낳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제 자본주의 성립 이후 최초로 발생한 19세기 말의 공황은 이런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19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은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상품 공급의 엄청난 확대로 대표됩니다. 이제 문제는 생산성이 아니라 이 엄청난 양의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것이고, 이것이 20세기 전반을 흔든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었죠. 노동자의 임금은 여전히 낮아 소비 수요는 적은데 공장에서는 계속 물건이 쏟아져 나오니 시장에서 다 팔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바로 과소 소비에 따른 조업율 저하의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뉴딜 정책으로 상징되는 케인즈의 처방이었고, 그것은 댐 건설 등 각종 정부 지출을 늘려 이자율을 내려도 늘지 않는 민간 투자나 소비를 대신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케인즈의 처방으로 위기를 넘긴 자본주의는 소비 부족 문제를 절감,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소득 증대를 정책의 기조로 잡아 생산성 향상 만큼의 임금소득 증대를 꾀하고,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 등의 확충으로 전후 50, 60년대 자본주의의 최대 장기 호황기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70년대 이후 다시 침체기를 맞았는데, 위의 식을 통해 보면 매출당 마진의 축소가 그 원인입니다. 마진 축소의 주원인이 사회보장 등 노동에 대한 과다 보상이라고 보는 배경 아래서 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 등의 신보수주의가 등장한 겁니다. 감세 정책 등 소위 공급측 경제학이 나온 것이죠.
20세기말에 나온 마이크로칩과 IT혁명은 자본 생산성의 증대로 90년대 이후 일단 호황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효력이 떨어져 다시 불황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은 20세기 전반부에 그랬던 것처럼, 생산력 증대로 인해 상품이 제대로 소비처를 찾지 못하게 되면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 등 세계 자본주의가 현재 활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강합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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