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70일 된 아기를 생모와 함께 납치해 생모는 살해·암매장하고 아기는 팔아 넘긴 반인륜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유부녀가 임신을 핑계로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면서 남편과 시댁을 속이기 위해 영아유괴를 청부했고,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이 여성은 아기를 넘겨받아 ‘미국 원정출산’으로 자신이 낳아 데려온 것처럼 위장해 결혼생활을 하는 등 ‘인면수심’의 극치를 드러냈다.
◆ 임신 핑계 동거남과 결혼 = 1990년 결혼해 2남매를 두고 있던 김모(36·여)씨는 2003년 3월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최모(31·운수업)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수려한 외모에 아버지가 경기 광주에서 큰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최씨를 붙잡기 위해 김씨는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뒤 결혼을 요구했다.
김씨는 결혼 한 달 전인 같은 해 10월 심부름센터 직원 정모(40)씨 등에게 "아들·딸 상관없이 미혼모의 아기를 데려 올 수 있겠느냐"고 의뢰한 뒤 11월 1인당 5만원씩 주고 위장 하객들을 동원시켜 최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두 자녀를 낳은 뒤 ‘난소질환’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으로부터 "왜 배가 나오지 않느냐"는 추궁을 받은 김씨는 결혼 3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최씨와 시댁가족에게 "친정인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고 오겠다"고 속인 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친구 집에서 지냈다. 3월 말 집에 돌아 온 김씨는 "아들을 출산했으나 신생아라 비행기를 탈 수 없어 나중에 친척이 데려올 것"이라고 속였다.
김씨에게 의뢰를 받은 심부름센터 직원인 정씨 일당 3명은 전국 보육원과 산부인과병원 등을 돌다 여의치 않자 지난해 5월24일 오후 2시께 경기 평택시 한 주택가에서 아기를 안고 가던 피해자 A(25·여)씨를 승용차로 납치했다. 정씨 일당은 "아기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A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강원 고성 야산에 암매장하고 아기는 김씨에게 7,000만원을 받고 넘겼다. 김씨는 "외삼촌이 미국에서 아기를 데려왔다"며 둘러댄 뒤 아이를 최씨 호적에 입적했다. 정씨 일당은 이후 이 같은 약점을 빌미로 김씨를 협박해 5,000여만원을 추가로 받아냈다.
◆ 뺑소니 사고로 덜미 = A씨의 시신은 살해된 지 20여일 만인 지난해 6월 강원 미시령 관통 도로공사 현장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지만 단서가 없어 미궁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살해범들은 충남 천안 지역에서 오토바이와 접촉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수배 차량을 그대로 타고 다닌 것이 사건해결의 결정적 실마리가 됐다.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길에서 불심검문을 통해 이들을 검거한 경찰은 우연히 차 안에서 숨진 A씨의 휴대폰을 발견했고, 휴대폰 취득 경위를 추궁한 끝에 범행 전모를 밝혀냈다. 인면수심의 사기극은 1년6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고 아기는 생부인 A씨의 남편에게 돌아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4일 김씨는 인신매매 혐의로, 정씨 일당 3명은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미혼모 아기를 데려오라고 의뢰했을 뿐 생모를 살해한 뒤 아기를 데려온지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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