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경제가치를 지닌 우리나라 신품종과 토종식물의 묘목 종자 등 ‘농업유전자원’이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중국, 미국, 일본 등으로 유출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률 미비로 유전자원 유출실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항이나 항만에서 요행히 유출자를 색출하더라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4일 농림부 장관에게 보고한 ‘2005년도 주요 업무계획’에 따르면 조생황금배 등 국내에서 거액을 들여 개발한 신품종이 중국으로 이미 유출돼 국내 농가에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으나 범인 검거는 물론이고 유출경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 2002년 이후 3년간 농진청과 관세청이 국내에서 개발한 사과, 배 신품종 묘목의 중국 밀반출 시도를 5차례 적발했으나 유출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묘목만 압수하는 데 그쳤다.
농진청 유전자원과 조은기 과장은 "농업유전자원 유출 행위를 처벌할 근거 법이 없어 종자를 갖고 나가더라도 제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당국에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21세기 핵심 국가경쟁력으로 떠오른 농업유전자원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국외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각국의 토종식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식량농업식물유전자국제조약(ITPGRFA)’이 발효되는 등 농업유전자원이 새로운 국가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관련 입법의 조속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의 중요한 농업유전자원이 해외로 유출돼 외국 종묘업자들이 커다란 이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 받는 구상나무는 구한말인 1905년 유럽으로 유출된 우리나라 토종 식물이며, 미국은 1960년대 우리나라 ‘앉은뱅이 밀’을 개량해 수확량을 40%나 늘린 신품종을 개발했으며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한 미국의 ‘미스킴’ 라일락도 한국이 원산지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중국이나 일본 등은 농업유전자원이 갖고 있는 천문학적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 이미 자국 농업유전자원의 해외 유출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했다"며 "우리나라도 조만간 닥칠 국가간 ‘종자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국내 농업유전자원을 지키기 위해 ‘농업유전자원관리법’을 연내 입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20만3,700점의 농업유전자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편, 유전자원의 무단 반출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