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본부노조가 광주공장 채용비리사건을 노조지부장 개인비리로 축소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의 파장이 기아차 노조 전체로 번지고 있다. 더구나 본부노조가 채용추천권 및 채용인원 할당 사실을 끝까지 감추려 한 것은 광주지부 뿐 아니라 다른 지부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수사도 자연히 전 공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광주지부 노조지부장의 채용사례금 수수 의혹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본부노조 및 광주지부 홈페이지에 생산계약직 직원 채용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글들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회사 감사실에는 무기명 투서까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노조측은 노조 위상문제 를 이유로 홈페이지에 오른 글들을 모두 삭제하는 등 실체 규명보다는 사건 덮기에만 급급했다. 생산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앞둔 지난해 12월 입사 부적격자가 470여명에 달하고, 노조 집행부와 노조 내 현장노동운동조직이 채용추천권을 행사해 채용인원을 할당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자 본부노조는 오히려 이를 사측의 ‘노조 죽이기’로 몰고 갔다. 노조는 당시 소식지를 통해 "사측이 채용비리에 노조 집행부와 현장조직이 개입돼 있는 것처럼 유언비어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이는 사측이 노조의 대응력을 약화시켜 생산계약직 가운데 일부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하는 것"이라고 비리의혹을 일축했다.
이후 상당수 대의원들이 "집행부가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본부노조 집행부는 12월13일 정기대의원대회에, 그것도 추가 안건으로 이 문제를 올려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집행부가 ‘광주공장 입사 관련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조사활동 범위를 채용사례금 수수문제에만 국한시켜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대의원들의 반발을 사 안건은 연내 처리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당시 집행부측은 "노조의 채용추천권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이를 거론하면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며 채용추천권 조사에 강력 반대했다. 집행부는 특히 "비리 사실이 밝혀지면 관련자는 형사고발하고, 관련자 중 집행부 간부가 있으면 집행부가 총사퇴하겠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집행부가 노조 내 대의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 대상을 축소하려 한 것은 이미 검찰 내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스스로 수사확대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노조의 채용추천권 및 채용인원 할당 문제를 건드릴 경우 자칫 광주지부 뿐 아니라 다른 지부까지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실제 박홍귀 기아차 본부노조 위원장은 "생산직계약자 채용과정에서 노조와 사측 등의 인사청탁이 공공연했고, 금품수수 사건이 터진 광주공장이 여타 공장보다 인사청탁 정도가 심했다"고 밝혀 채용비리가 각 지부마다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 달 17일 속개된 대의원대회에서 실시한 특위 구성을 위한 찬반투표에서 광주공장(48%)의 찬성률이 가장 낮았던 것은 전 공장에 이런 관행이 있는 가운데도 광주공장에서 유독 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일자리 세습까지 관철시켜
기아자동차 노조 광주지부의 채용비리사건을 계기로 경영·인사에 관한 기아차 노조의 막강 권한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단체협약상 인력운용과 작업환경 변경이 노조의 동의 없이 사측 단독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인이전 시 인력운용방안, 공장이전 및 통폐합, 지점 폐쇄 및 통폐합, 신차종 신기술 신기계 도입으로 인한 작업환경개선 시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심지어 지난해 7월 노사 임·단협에서는 27년 이상 장기근속 근로자의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도 성사시켰다. 입사시험에서 동점 시 직원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예는 있지만 장기근속자라는 이유로 자녀를 우선 채용해주는 경우는 타 업종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조차 일부 노조원들의 요구가 있었으나 ‘일자리 세습’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보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선진국내에서도 노조의 경영권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 노조가 사측과 합의로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터부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라인공정의 특성상 소수의 인원만으로 공장을 멈출 수 있는 자동차 업종은 선진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노조의 입김이 셌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권한이 통념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나 노조간부의 도덕불감증과 비리를 낳은 만큼 적절한 통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기아차 노조간부의 채용비리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초래할 중대사안으로 보고 금명간 금속연맹과 함께 철저한 진상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자동차 공정의 특성상 노조가 채용과정에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추천과정이 조합 내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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