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출판계에서 대학출판부만큼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곳이 없다. 대학 부속기관으로, 정해진 1년 예산을 갖고 학위논문 편집보다 별로 나을 것 없는 학술서나 교재를 만들던 구태를 너도나도 벗어 던지고, 상업출판사들 앞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 부산대 성균관대 건국대 등 여러 대학의 출판부들이 대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채산방식의 별도 법인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상업출판사들이 꺼리는 학술 저작을 의뢰 받아 출간해주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닌 기획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김용숙(58·불어불문학) 이화여대출판부장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대학출판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출판부는 책 내놓고 손해 봐도 그만이다는 식이었죠. 장사 안 되는 집은 오던 손님 끊기고, 새 손님은 안 오는 법이거든요. 대학 교수와 연구원들이 생산해 내는 엄청난 콘텐츠를 그냥 썩이거나, 다른 상업출판사에 줘 버리고 있었죠."
그래서 김 부장은 2002년 출판부장을 맡고, 이듬해 초 이화여대출판부를 별도 사업자로 독립시켰다. 너덧 명에 불과하던 직원도 지금은 15명으로 늘었으며, 없던 디자인실을 새로 만들고, 편집부서를 팀별로 구성해 성과급 방식으로 운영한다. 지난해 매출은 14억원으로 당초 목표했던 2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독립채산제로 바뀌기 전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외형뿐 아니라 내실의 변화는 더 인상적이다. 책의 디자인이 세련돼졌고, 발행 종수가 크게 늘었다. 큰 기대를 거는 건 대중성 있는 기획출판 쪽이다. 첫 작품으로 준비한 ‘한국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시리즈물이 곧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 전통문화를 소개한 책들은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반대로 관광안내책자 식의 수박 겉핥기"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전문성 있으면서도 사진, 그림 등 시각물을 적극 활용해 우리 문화를 쉽게 알도록 하자"는 취지다.
모두 25억원을 투자해 2009년까지 이어질 이 시리즈는 문학 사상 음악 미술 공예 가구 음악 풍속 등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1차 분으로 ‘한국사 입문’(신형식), ‘노리개’(이경자)와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임석재 교수의 책 5권이 한꺼번에 선보인다. 문고본 크기에 120쪽 분량 책자의 절반이 관련 이미지다.
중요한 건 이화여대 통·번역센터의 도움으로 영어 번역이 완료되어 한글본과 영어본이 동시 출간된다는 점이다. 해외 홍보를 위해 지난해 출판부 홈페이지에 영어로 된 인터넷서점도 개설했고, 올해 말까지 나올 10종의 영어본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전시할 예정이다. 인문과학부 교수이기도 한 김 부장은 "우리 문화를 다양하게 세계에 알리려는 작업이 너무 부족했다"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해외사무소처럼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전문창구가 있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출판부가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우선 대학이나 외부의 지원 없이 경영을 얼마나 안정되게, 그러면서 외형을 키우는 쪽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상업화에 길들어 대학출판부의 본령이랄 수 있는 학술출판을 도외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값진 출판, 격조 높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김 부장을 비롯한 대학출판부가 떠 안아야 할 고민이 앞으로 더 많아 보인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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