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의 역을 결정한 뒤 많은 질문을 받았다. 대부분 ‘그 사람이 그 역에 잘 어울려?’라는 식이었다. 아마도 그 배우의 외모가 등장인물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연기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성격이란 게 매우 복합적인 개념이다. 적어도 겉모양만으로는 그 사람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실제로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오히려 생김새와 됨됨이가 일치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예쁘장하게 생겨서 미운 짓만 골라 하거나, 멍청한 얼굴이지만 알고 보니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식이다.
결국 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기준은 겉모양이 아니라,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사람들마다 성격이 다르고,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가를 살펴보면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만약 배우의 생김새가 등장인물의 현신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분명 연기자 자신 뿐 아니라, 연출 및 관객 모두에게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기하는데 있어서 충분조건이 결코 될 수 없다. 연기라는 것은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가공의 존재인 극중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배역인물의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행동, 즉 극적 행동을 충실히 수행하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의 외모나 풍기는 느낌이 워낙 중요한 세상이다. 소위 ‘이미지’라는 것이 배우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연기라는 작업 자체로 배우를 평가하는 풍토, 연예인이기 이전에 연기자일 수 있는 배우가 더없이 절실한 심정이다.
황재헌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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