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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24> 칼리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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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24> 칼리굴라

입력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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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1년 1월24일 로마제국 제3대 황제 칼리굴라가 근위대 장교에게 암살됐다. 29세였다. 칼리굴라는 조카이자 로마제국 제5대 황제 네로와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꼽히는 군주다. 네로는 칼리굴라의 누이동생 소(小)아그리피나(율리아 아그리피나)의 아들이다. 칼리굴라의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황제(옥타비아누스)의 손녀인 대(大)아그리피나(위프사니아 아그리피나)고, 아버지는 무용(武勇)으로 이름 높던 장군 게르마니쿠스다. 그래서 칼리굴라의 본명도 카이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다.

칼리굴라의 아버지는, 게르마니쿠스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게르마니아(지금의 독일 지역)를 평정하고 다스리던 장군이었다. 그래서 칼리굴라는 어린 시절을 게르마니아의 병영에서 보냈다. 그 시절 그가 신었던 어린아이용 군화(칼리가이) 탓에 이 아이는 칼리굴라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데, 이 별명은 나중에 그의 이름처럼 돼 버렸다. 아버지의 양부였던 티베리우스 황제는 일찌감치 칼리굴라를 제 후계자로 지명했고, 그래서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가 살해된 서기 37년에 제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선정을 펼쳐 원로원과 군대, 일반 시민들로부터 폭 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이내 자신이 신(神)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폭정을 일삼다가 살해되었다.

칼리굴라는 20세기 들어 알베르 카뮈의 4막 희곡 ‘칼리굴라’(1939)를 통해 문학사전에 굵은 글씨로 등재되었다. 제라르 필리프가 타이틀롤을 맡아 1945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소설 ‘이방인’,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 등과 함께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또렷이 드러낸 작품이다. 이 연극에서, 칼리굴라는 정부(情婦)이자 누이인 드루실라가 죽자 인간과 신의 질서에 맞서 저만의 자유를 행사하려 든다. 그는 선악의 피안에 서서 궁정을 피로 물들이며 마침내 타인들만이 아니라 저 자신의 처형자로 변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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