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K씨 등 7명에게 국내 은행 점포를 통해 총 485만7,000달러(약 57억원)가 송금됐다. 보낼 때마다 거의 대부분 명의(209명)를 바꿔 무려 258차례로 쪼개 보낸 액수이다. 물론 국세청 통보 등을 회피하기 위한 분할 거래였다. 하지만 은행 창구 직원은 알면서도 모른 척 불법 거래를 허용해줬고, 관계 당국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국내 부유층들의 불법 외화 송금을 방조하고 묵인해 준 은행 점포와 직원들이 무더기 적발됐다. 거액 증여성 송금, 해외 부동산 매입 등 불법 외화 유출은 결국 부유층 고객과 이를 보호하려는 은행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3개 은행, 127개 점포를 대상으로 일제 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 중 절반이 넘는 69개 점포(11개 은행)에서 총 6,148만 달러(약 714억원)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 사례가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제3자 명의 외화 매매로 인한 금융실명제 위반 9개 점포(5개 은행) 3,729만 달러 ▦한국은행 총재 신고 여부 미확인 3개 점포(2개 은행) 111만 달러 ▦1만 달러 이하 분산 송금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미보고 37개 점포(10개 은행) 1,029만 달러 ▦자금출처확인서 등 확인 의무 소홀 29개 점포(8개 은행) 1,390만 달러 등이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은행 직원 41명에 대해 정직(3월) 감봉(3월) 견책 등의 문책 조치를 하는 한편, 이 중 35명에 대해서는 금융실명제 위반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재정경제부에 통보했다. 은행별 제재 직원 수는 외환은행이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9명) 조흥(7명) 신한(7명) 제일(2명) 등의 순이었다.
또 혐의 거래 미보고에 따라 FIU에 통보된 은행 점포는 외환 15개, 국민 12개, 신한 3개, 우리 농협 기업 각 2개, 한국씨티 하나 제일 부산은행 각 1개 등이었다.
금감원은 또 해외 부동산이나 골프장 회원권 취득 과정에서 신고 의무를 위반한 16개 기업과 개인 82명을 적발, 최고 1년간 외국환거래정지 등 행정 처분을 내렸으며 이 중 4명에 대해선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한편 지난해 금감원에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 규모는 총 1억648만5,000달러(1,237억원)에 달했으며, 1년간 적발된 외환거래 당사자는 기업 187개, 개인 623명 등 총 810건이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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