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향 연주회는 예정에 없던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로 시작했다. 이 ‘작은 사건’의 주인공은 태국 출신 지휘자 번디트 운그랑세(사진). 최근 남아시아 지진해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자신의 동포들을 비롯한 희생자와 난민을 위로하자는 뜻에서다. 연주에 앞서 장내방송은 관객들에게 이런 사정을 알리며 "박수를 치지 말고 묵념해달라"고 요청했다.
음악가들도 사회의 일원인 이상 극심한 재난이나 불행에 어떤 형태로든 위로를 보내고 돕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국내클래식 무대에서 이런 장면을 만나기가 드문 탓인지, 엘가가 친구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작곡했다는 이날의 묵념곡 ‘님로드’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번 지진해일에는 전세계가 지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고, 예술가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산드라 불록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거액을 기부했고, 영국의 건축가 단체 ‘인간을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Humanity)은 피해지역 재건에 나섰다. 오스트리아의 빈필은 올해 신년음악회 수익금을 기부했으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뜻으로 매년 신년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흥겨운 ‘라데츠키 행진곡’을 생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프라노 신영옥이 신년음악회가 끝난 자리에서 1,000만원을 성금으로 전달했고, 국립국악원과 국악계를 대표하는 명인들도 뜻을 합쳐 19일 성금모금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음악이 세상의 고통과 눈물을 다 씻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연민과 공감의 선율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서울시향의 ‘님로드’ 연주는 바로 그 작은 끈이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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