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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씨 ‘리메이크 코리아’전 /같지만 또다른… 미술계도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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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씨 ‘리메이크 코리아’전 /같지만 또다른… 미술계도 리메이크

입력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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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가 미술전시에도 등장했다. 기존 작품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 리메이크는 영화나 대중음악에선 흔한 일이지만 미술에서는 낯설다. 그렇다고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카소가 인용·각색하는 등 리메이크를 통한 미술창작은 꾸준히 있어왔다.

스페이스씨가 20일부터 여는 기획전 ‘리메이크 코리아’는 전시를 채운 내용보다 포장에서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여기에 리메이크 작업을 벌여온 9명의 화가 써니킴 김종구 김지혜 김태은 류재하 이순종 임영길 장희정 정주영이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 전통미술의 산수화 풍속화 민화 고분벽화를 인용, 한국의 과거와 현재의 조우를 시도해왔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확대경을 들이대온 정주영은 정선의 ‘백악산’ 봉우리와 ‘통천문암’ 바위 부분에 시선을 밀착시켜 확대해 그린 유화를 내놓았다. 김종구는 먹과 붓을 대신해 쇳가루와 비디오영상으로 한국적 산수를 선보인다. 세로 7m 짜리 광목천에 쇳가루로 글씨를 쓰고 시간이 흐르며 흘러내린 쇳가루가 만든 신개념 산수화다.

이순종 써니킴은 여성의 시각에서 풍속화를 재해석했다. 이순종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차용했다. 작품 속 여인들은 섬뜩한 귀기(鬼氣)도 느껴지는데 작가는 여성의 무시무시한 파워를 형상화하고자 했다고 한다. 재미동포작가 써니킴은 십장생을 수놓은 자수화 속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이 거닐고 있는 듯한 초현실적 이미지를 표현했다.

김지혜의 ‘Luxury Life’에서는 옛 선비의 서가 표정을 담은 책거리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문방구 도자기 같은 소품이 놓여야 할 자리를 구두 보석 화장품 가구 인형 또는 명품브랜드 로고들이 차지, 소비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영상작가 김태은은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을 차용한 작품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우리 옛그림을 텍스트로 작업하기는 처음이다. 사대부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민화 평생도에서 돌잡이 글공부 장원급제 등의 내용을 입시 취업경쟁 호화결혼 등으로 바꿔치기했다.

큐레이터 배명지씨는 "출발점은 과거이나 현대적 삶의 의식과 동시대성을 은유하면서 한국 전통 가치를 시대적 감각에 맞춰 새롭게 추출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에 출품된 회화 영상 설치 35점은 작가들이 종전에 해온 작업선상에 있는 만큼 작품 자체의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리메이크’라는 용어를 끌어들여 화단에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을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눈길을 끌만하다. 3월26일까지. (02)547-9177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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