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어제 2기 취임연설에서 자유의 확산과 폭정 종식이 미국의 시대적 사명임을 천명했다. 자유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만큼 이를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호소는 원칙적으로 지당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자유의 확산이라는 대의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현실 정치적인 필요성도 작용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라는 명분을 잃어버린 이라크전에서 무수한 인명의 희생과 막대한 예산 지출을 미국민에게 감내토록 할 대의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폭정 국가들을 압박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 쿠바 등 6개 국가를 지목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그러나 자유의 확산이라는 대의가 자칫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변질하여 다른 나라의 주권과 권익을 침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유럽 등지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위험한 사명’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특히 부시의 메시지를 북한 핵 문제가 걸려 있는 한반도 상황과 결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폭정국가 리스트의 선두에 북한을 꼽고 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확대하고 인권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나 발등의 불인 핵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정부 체제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에 주목하면서 내달 2일 국정연설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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