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8개월 전부터 평당원이다. 특별히 맡고 있는 당직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하면 ‘권영길’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린다. 빨치산의 아들에서 신문기자, 노동운동가, 진보정당 대표를 거쳐 국회의원에까지 이른 그의 이력도 권 의원을 진보정당운동사의 상징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권 의원은 원내 진출 첫해에 대한 소감을 묻자 "민노당이 기존 정당과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준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답했다. "너무 관대한 평가 아니냐"는 지적에 "기존 보수정당과 다르다는 인식만 확실히 심어준 것만 해도 큰 성과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1988년 언론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당 대표를 그만둘 때까지 줄곧 장(長)의 위치에 있었던 그에게는 항상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평가가 따랐다. 운동권 특유의 치열한 논쟁과 노선대립 속에서도 여유를 잃는 법이 없고 필요할 때 단호한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초 혹한에 1주일간 단식농성을 강행해 결국 이해찬 총리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표면상으로는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 대한 경찰 난입을 문제삼았지만 사실은 민노당에 대한 정부·여당의 무시와 배제에 맞선 것이었다. 김성희 부대변인은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철저히 소외되면서 당원들 사이에 위기감이 상당하던 때에 민노당의 존재를 다시 한번 알려낸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문제로 화두가 옮아가자 권 의원은 대뜸 "언제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으냐"고 물었다. 2002년 대선 때 인구에 회자됐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의 2005년 버전이라고 했다.
그는 부유세 도입의 필요성, 무상교육·의료·주택정책의 현실화 가능성 등을 차분하게 역설했다.
내친김에 2007년 대선 얘기를 꺼냈더니 "당원의 뜻에 따를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뿔테안경 너머 그의 눈에서는 강한 의지가 읽혔다.
물론 권 의원에게는 여전히 ‘정치적 소수’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본인을 포함해 민노당의 각종 정책들이 이상에 치우쳐 있고 관념적이라는 평가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3자 개입금지 위반혐의로 최근 2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받아 의원직 상실위기에 몰려 있다. 물론 이미 사문화된 법이긴 하지만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권 의원은 천상 낙관론자였다. 그는 "97년 대선에서 참패한 뒤 다른 당으로 떠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며 입버릇처럼 말해온 ‘2012년 집권 계획’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내달 16로 예정된 2심 선고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게 개혁인데 사법부가 이를 외면하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믿음과 낙관만큼이나 민노당이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진보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제도권 진출 2년째인 그의 걸음걸이가 주목된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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