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자백가의 명가(名家)는 ‘세상이 혼란한 것은 이름과 실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혼란도 상당부분 명(名)과 실(實)의 불일치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반공과 동의어였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용어도 생긴 뜻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모여서 외치는 구호였거나, 다른 집단을 매도하기 위해 붙이는 딱지에 불과했다.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논쟁의 지평은 그래서 황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성균관대 김비환(47·정치학·사진) 교수가 낸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성균관대출판부 발행)은 시장과 민주주의를 정확히 개념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그는 서구 자유주의 전통에서 나타난 학자들을 시장과 민주주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유형을 나눠 각각의 논리를 소개했다. 시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신우익적 자유주의자(노직, 호스퍼스, 로스바드, 랜드, 오스트리아학파, 시카고학파, 버지니아 공공선택학파 등), 시장과 민주주의의 균형을 꾀하는 균형적 자유주의자(롤스, 하버마스, 드워킨 등), 시장보다 민주주의를 우선하는 자유주의자(벨라미, 다알, 굴드 등) 등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한국식으로 따지면 극우에서 극좌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그는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설정하는 ‘최상의’ ‘유일한’ 방식은 없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자유주의는 일정한 문화공동체의 산물로 그 문화공동체 내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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