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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과학의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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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과학의 ‘X파일’

입력
2005.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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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해외출장 길에서 비행기 기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지난 여름 국내극장에서도 개봉됐던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의 내용 역시 그 동안 로봇을 등장시켜 만든 영화의 줄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인간을 배신하고 어느날 인간과 마찬가지의 진화과정을 거쳐 마침내는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에게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르게 여운이 남았던 이유는 이제 로봇이 더 이상 공상과학영화 속의 소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세계 속으로 점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몇몇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에서도 스스로 충전까지 하면서 집안청소를 하는 진공청소기용 로봇이 개발돼 사무실이나 일반가정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같은 빌딩 내 사무실을 오가며 서류배달을 하는 로봇 또한 인기여서 급속히 그 활용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 최근 국방부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신이 들고 다니는 방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지스(Aegis)’라는 로봇을 개발해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에 실전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 로봇은 사방 2km이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포착, 상황판단을 하고 적으로 판명될 경우 장착된 소총으로 사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니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얼마 전에 한국과학기술원 등이 개발한 로봇들은 주인을 알아보고 행동도 흉내내며 두 발로 걷는 등 사람을 꼭 닮은 인공지능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듯 현대과학은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토록 하고, 나아가 전쟁까지도 기계에 맡겨 수행토록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 언제나 인간의 삶에 편의와 혜택을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과학적 진보가 때로는 문명을 파괴하고 인간관계를 단절시켰던 경험을 상기해보자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급속히 발전하고 발현된 과학의 힘은 한꺼번에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뿐만아니다. 과학의 힘은 세분화하고 전문화한 지식을 전제로 한다. 이로 인해 과학에 대한 지식과 사용능력은 인간 관계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과학은 윤리적 성찰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과학의 발달이 종종 인간의 저항에 부딪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거 뎠뮈【??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계에 일감을 빼앗긴 실업자가 급증하고 취업자들의 임금도 급락했다. 이 때문에 1811년부터 7년 여 동안 영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기계파괴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여졌다.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될 정보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은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을 들끓게 하고있는 ‘연예인 X파일’만 해도 그렇다. 인터넷을 통해 내밀한 사적 자료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지고 급기야 외국의 주요언론들도 보도함으로써 아직 진위조차 파악되기 전에 당사자들은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해 버린 것이다. 이메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매체건만 도리어 인간사이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미국에서만 하루 평균 교환되는 이메일의 건수가 119억 통에 이를 정도라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시카고의 어느 휴대전화회사에서 시작, 점차 확산되고 있는 ‘이메일 사용금지 운동’은 인간소통 복원의 첫출발일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과학이 인간을 배신하고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기 전에 한번쯤은 이들을 파괴해 버리는 상상이라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과학의 ‘X파일’이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기 전에.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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