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영어가 20점 만점에 3점!"
"그래도 역사는 18점인데!"
"25점을 받았대도 소용없어. 그런다고 영어 3점이 어디 가니?"
"그러는 엄마는 왜 앙티비오풀(엄마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는지 궁금한데요."
이쯤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십중팔구 "지금 엄마 직장 얘기는 왜 나오니? 얘가 엄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네 방에 들어가!" 소리 지르고는 혼자 씩씩거리다가 영어학원 알아보러 여기저기 전화하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시작부터 우울한 영어공부가 될 것이고.
까모 엄마는 다르다. 아들의 맹랑한 도전에 일단 속 시원하게 웃는다. 그리고 자기는 새로 직장을 얻어 계속 다닐 테니 까모는 석 달 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석 달 만에 영어를 다 배우라고 한다. 드디어 석 달째 되는 날, 까모에게 영어 이름이 가득 적힌 종이를 건네며 그 중 하나를 골라 펜팔을 하란다. 프랑스어로 써서 보내면 상대방은 영어로 답장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영어공부가 될 거라고. 까모는 ‘캐서린 언쇼’라는 이름을 골라 편지를 보낸다. 캐서린은 까모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여읜 지 얼마 되지않아 아직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날 수도 없다. 게다가 그녀는 고아 H를 사랑하고, H의 마음에도 캐서린 밖에 없는데 오빠 힌들리는 H를 증오하고 학대한다. 그녀의 힘든 상황에 까모의 마음은 빠져든다.
한편, 캐서린의 편지는 여간 이상하지 않다. 봉투는 풀이 아니라 밀랍 도장으로 봉인되어 있고, 거칠고 두꺼운 편지지에는 18세기 영국 왕, 조지 3세의 스탬프가 찍혀있는가 하면 문장은 옛날식 영어다. 캐서린은 지하철이 뭔지도 모르고 전화의 존재도 모른다. 그녀는 200여 년 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캐서린은 유령인가?
제목을 보고 영어학습서인가 하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인가 싶고, 캐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보면 추리소설인가 할 정도로 구성은 여러 겹이고 그래서 재미있다.
까모는 정말 캐시의 이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한 걸까. 까모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실을 알고 싶은 조바심에 한숨에 끝까지 읽고 나면 영어공부라는 과제에 과거의 문학유산과 현재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공부의 비결을 얻고 싶었던 독자들은 결국 동기유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대답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호기심의 자극에서 온다는 것도. 겨울 방학을 맞아 영어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명제에만 무조건 집착한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볼 일이다. 그건 그렇고 캐서린 언쇼가 누굴까? 힌트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다. 가슴 아픈 운명적 사랑 이야기인.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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