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가 민주주의의 축제 성격은 퇴색하고 정계-관가-기업이 얽히는 부패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20일 취임식을 전후해 기부금이 목표액 4,000만 달러를 넘어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부금 규모도 기록적이지만 문제는 돈의 성격에 있다. 미국의 정치감시 시민단체인 퍼블릭시티즌에 따르면 기부금의 96%는 기업이나 기업체 중역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새 정부 실세에 줄대기나 유리한 정책 형성을 위한 로비 등 ‘속셈’이 있는 돈이라는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금융 업계가 35개 기업 500만 달러 기부로 1위, 에너지 업계가 12개 기업 23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퍼블릭시티즌은 "금융업계는 부시의 사회보장제 개혁이 성공하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고, 에너지업계는 반환경 정책을 펴는 부시 덕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감시단체 CRP는 "기부 기업은 대부분 정부 계약자들이나 부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큰 돈이 걸린 업체들"이라며 "기업들이 기부에 앞장서는 것은 워싱턴의 철칙 중 하나가 ‘(대통령 등 고위 정 관계 인사와의) 접촉은 곧 돈’(Access is Currency)’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편법까지 동원해 고위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연줄을 맺으려 하고 있다. 부동산 재벌인 아메리퀘스트는 자회사 3곳을 이용해, 기부금 한도 25만 달러를 깨고 100만 달러를 냈다. 자동차 회사인 GM과 유통업체인 월마트 등은 워싱턴의 최고 레스토랑에서 각종 규제권한을 가진 부처의 장관이나 의원들을 초청해 사적 만찬을 열었다.
취임식이 이처럼 정경 유착 위협에 놓인 것은 미국 정치자금법의 허점 때문이다. 미국은 2003년 매케인-페인골드 수정안에 따라 선거기간 중 정당이나 선거 후보자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취임식 준비위원회에 대해서는 200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 공개 등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런 규제가 없다. 취임식 기부에 ‘6자리 숫자’(six-figure·10만 달러 이상이라는 뜻) 수표가 척척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취임식 시즌은 기부자의 ‘엽관(獵官)’과 정관계 인사의 관련 업계 ‘낙하산’등 ‘회전문(Revolving Door)’이 극성을 부릴 것이란 우려도 많다.
실제로 의약산업을 다루는 하원 에너지통상위 소속이었던 빌리 타우진 전 공화당 의원은 이번에 의약업계 최고 로비단체인 PhRMA의 로비스트가 됐다.
부시의 2000년 대선 파이어니어(정치 헌금 10만 달러 이상 모금자) 246명 중에선 도널드 에번스 상무, 톰 리지 국토안보장관, 23명의 대사가 배출되는 등 절반 가까운 104명이 정부 고위직을 차지했다. 이번 취임식 기부금의 40% 정도도 파이오니어의 돈인 것으로 분석된다. CRP 대변인은 "이들은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가’ 대신, ‘국가가 우릴 위해 뭘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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