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을 연신 땀을 닦으며 바쁘게 간다. 친구들과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이다. 초등학생이 걷기엔 제법 먼 길이지만 마땅한 놀이가 없던 그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할머니 댁은 마당가에 돌배나무가 커다랗게 서 있는 한옥이다. 가지에 높이 달린 주먹만한 돌배를 장대나 하다못해 고무신이라도 벗어 던져 따먹으면 맛이 그렇게 시원하고 달콤할 수가 없었다.
올망졸망한 방에 높은 부뚜막, 진흙으로 바른 담 등 지금은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아담한 집 대문을 밀면 ‘삐이꺽’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내 손자 오나"하시며 나오시다 문고리를 잡으신 채 "아니 친구들도 같이 오는구나. 어여들 들어오너라"하신다. 친구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꾸벅 절한다.
할머니는 "할미가 무얼 해줄까"하시면서 호박을 찾는다. 속을 긁어 대장간에서 만든 부엌칼로 듬성듬성 썬 후 가마솥 장작불에 넣으면 구수하고 달콤한 호박범벅이 된다. 친구들은 배꼽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이제나 저제나 안달하며 호박범벅을 기다린다. 그러면 할머니는 농사일에 거칠어진 손으로 넉넉하게 듬뿍 퍼주신다.
먹을 것 귀하던 그 때 무언들 맛이 없었을까마는 할머니의 푸근한 손 맛에다 사랑의 조미료까지 더해진 그 맛을 어디에 비길까. 할머니는 그렇게 포근하고 아늑한 정을 주셨다.
할머니 댁은 이제 기름보일러에 콘크리트 양옥으로 바뀌었다. 추억이 깃든 배나무 자리에는 감나무가 들어서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흙 담이 둘러진 할머니의 옛 집이 그립다.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포근함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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