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은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재일동포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이후 사건실체와 수사 대상을 놓고 대립하면서 국교 단절까지 고려하는 심각한 갈등국면으로 치달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관련기사 A6·7면
이런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20일 공개한 박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외교문서(총 3,030쪽 분량)를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에 조총련 수사를 촉구하는 등 대일 강공책을 구사한 이면에는 1년 전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에 따른 외교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문서들이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문세광에게 암살지령을 내린 조총련 간부 김호룡 등을 일본이 수사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 일본대사, 일본측 특사로 내한한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자민당 부총재 등을 만나 국교단절을 시사하는 어조로 강력 항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국의 갈등은 미국이 개입하면서 봉합됐다. 하비브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는 사건 발생 직후 "한일관계가 손상되면 한국 방위도 어렵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한일 양국의 타협을 유도했다.
한국 외무부는 사건 발발 직후 작성한 ‘저격사건과 관련한 대일 조치방안’이라는 문건을 통해 김대중 납치사건을 언급하면서 대책을 거론, 두 사건의 연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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