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 생기는 것이 고속도로이다. 덕분에 오지로 꼽히던 지역이 하루 아침에 교통요충지로 변모하는 세상이 됐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강원 정선군은 여전히 국토의 오지이다. 영동, 중앙, 동해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정선지도를 펴면 마치 꼬불꼬불한 신체의 내장을 보는 느낌이다. 반듯한 길을 볼 수가 없다. 오지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법.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은 고스란히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이 중심에 정선아리랑 유람열차가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광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으로 나그네를 안내한다.
이름은 거창한 듯 하지만 달랑 객차 1개가 전부이다. 객차 앞뒤로 기관차가 1개씩 달려있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열차인 셈이다. 그래서 꼬마열차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열차의 종점인 아우라지역은 정선아리랑의 발생지이다. 송천과 골지천이 이 곳에서 어우러진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모르나…"
객지로 떠난 님을 기다리는 애절한 마음을 질펀한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여심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줄배를 타고 건너던 강을 가로질러 섶다리가 놓여 운치를 더한다.
원래 꼬마열차의 종점은 철로를 따라 5km가량 더 가면 나오는 구절리였다. 아우라지-구절리구간은 올해 4월 레일바이크(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일종의 궤도 자전거)를 운행하기 위해 잠시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대신 주민들을 위해 아우라지역까지 열차 운행시간에 맞춰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열차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에 놀라 다급하게 몸을 실었다. 낡은 완행열차를 생각했는데 객실내부는 열차카페를 연상케하는 세련된 분위기이다. 몇몇 의자는 아예 창 밖을 보도록 배치했다. 관광용열차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열차에서 만난 이정녀(70) 할머니는 시골할머니 답지 않게 입은 옷이 세련돼보인다. 6년 전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따라 구절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맑은 공기 마시면서 직접 농사도 짓다 보니 남편 건강이 많이 좋아졌단다. 이 날은 평소 앓던 관절염치료를 위해 정선읍내로 가는 길이다.
나전에서 태어나 아우라지로 시집간 정선토박이 유귀근(76)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70년대 초쯤 됐지. 구절리 석탄 운송을 위해 벽촌이던 이 곳에 철로가 놓이고 기차가 다니자 어찌나 신기하던지 동네사람은 물론, 이웃 동네에서도 몰려와 기차를 타려고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지. 지금 생각하면 그게 최초의 관광열차지 뭐야."
나전에서 탑승한 김덕순(68) 할머니는 뒷산에서 캐낸 황기를 증산장에 팔러 가는 길이다. 20년 이상 해온 일이라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집에서 놀면 뭐해, 한 푼이라도 벌어 손주 학용품이라도 사줘야지"라고 답한다.
나전을 지나 도착한 정선에는 새로운 명소가 반긴다. 1만평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아라리촌은 정선지역 600년 역사를 아우르는 곳이다. 굴피집, 너와집, 귀틀집, 돌집 등 전통가옥과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 농기구를 한 데 모았다. 조만간 가옥에서 숙박하며 다양한 전통체험을 즐기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정선에서 선평, 별어곡을 지나 증산으로 가는 길은 철도여행의 하일라이트구간. 동대천과 59번 국도사이로 우거진 소나무숲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아우라지를 출발한 열차가 마지막 서는 곳은 증산역. 38km를 달리는 데 50분 가량 걸린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달콤한 휴식 같은 여행이다.
정선=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여행팁
정선꼬마열차는 45명을 태울 수 있는 관광용 미니열차이다. 증산역과 아우라지역에서 매일 하루 3차례 왕복운행한다. 증산역에서는 오전 6시45, 오후 2시, 오후 6시15분, 아우라지역에서는 오전 8시31분, 오후 3시51분, 오후 7시30분 출발한다. 요금은 1,200원, 어린이 600원이며 구간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은 이달 4월부터 관광용 레일바이크가 들어서 새로운 명물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레일바이크는 철도궤도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 관광객이 직접 페달을 밟아 앞으로 진행하는 무동력열차이다. 정선군은 우선 50대를 보급하며, 반응이 좋으면 대수를 늘릴 계획이다. 철도청과 정선군은 정선의 대표적인 5일장인 정선장(2,7일장)을 열차로 둘러보는 상품을 마련했다. 매달 끝자리가 2, 7일자인 날 오전 8시10분 청량리역을 출발, 낮 12시께 증산역에서 꼬마열차로 갈아타고, 정선역에 도착, 장터여행을 한 뒤 오후 9시55분에 청량리에 도착한다. 인근 화암약수, 화암동굴, 아우라지 및 항골계곡 등을 관람하는 상품도 마련돼있다. 평일출발 상품은 5만원가량. KTX관광레저 (02)393-3100. 정선군 관광문화과 (033)560-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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