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8년 전 신부로 수품(收品)될 때 있었던 일이다. 수품식에 참석한 신자들을 위해 근처 뷔페홀을 빌어 식사를 대접했는데, 흔히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자주 사용되던 곳이라 입구에 엉뚱하게도 "신부 송용민 양"이란 팻말이 서 있었다.
뷔페홀 담당자야 가톨릭 "신부(神父)"인지 결혼하는 "신부(新婦)"인지 알게 뭐냐. 한바탕 소동 끝에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가끔 생각나면 혼자 키득키득 웃곤 한다.
성당에서 결혼식 주례를 설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사회자가 "지금 주례하실 신부님께서 입장하십니다"하면 대부분의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성당 뒤쪽에서 입장을 기다릴 "신부(新婦)"를 쳐다본다. 멋쩍게 제단에 입장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 상영된 ‘신부수업’이란 영화제목도 그렇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천주교 신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낸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신부수업이 "신부(神父)수업"인지 "신부(新婦)수업"인지 구분이 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하긴 그 뿐이랴. 한동안 유행했던 사오정시리즈도 같은 말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네 언어적인 혼동을 패러디한 것이 아닌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란 말이 있다. 같은 말인데 어떤 뉘앙스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뭇 다르게 들린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언어로 표현되기에 한 사람의 언어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학자들은 우리의 생각과 삶이 언어에 의해서 때로는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란 말들을 많이 사용할수록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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