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3분의 1이 잠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사람이라면, 진작 놀랐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4분의 1을 TV 앞에서 보낸다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들은 죽을 때까지 12년 동안 TV를 본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생 10년 동안 TV를 본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예담프렌드 발행)를 낸 고재학 한국일보 경제과학부 기자는 "TV를 안보면 사랑과 화목, 건강이 찾아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TV 리모컨 돌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그는 1년 7개월 전부터 ‘TV 끄기’를 실천하고 있다. "TV를 끄고 저녁때 온 가족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합니다.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져 의사소통이 원활해졌고, 아이들은 물론 저부터 책 읽는 시간이 훨씬 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 집에 오면 TV만 끼고 사냐"고 부부 사이에 벌이던 신경전이나, "TV 그만 보라"고 아이들에게 야단치느라 쌓이는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책에서 체험과 자신이 직접 30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사례, 국내외 학자나 시민운동단체의 다양한 연구를 인용해 TV 안 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결과로 얻는 이익은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교육효과를 염두에 둬 제목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TV를 꺼야 한다고 붙였지만, TV 안보기는 실은 부모들, 성인들에게 더 중요하다. 실천의 가장 큰 걸림돌 역시 부모, 그 가운데 아버지라고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TV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 무감각한데다, 뉴스는 봐야 하지 않느냐는 ‘선별적 시청론’을 주장하면서 TV를 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선별적 시청론은 TV에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방영된다거나, TV시청 자체가 중독성이 강하다는 비판을 모두 인정하지만, 그래도 TV 프로그램 중 교양물이나 뉴스 등 봐서 이로울 내용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론으로는 좋지만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선별해서 보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도 일단 TV를 켜면 절제가 어렵습니다. 답은 아예 TV를 켜지 않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버려라’에서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리 맨더는 우리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상업방송이 기술조작으로 만들어내는 과잉자극에 도취해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과잉자극에 익숙한 사람은 일상생활이 지루하다고 느끼고, 욕구불만을 채우기 위해 다시 TV 앞에 앉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TV 끄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도 함께 꺼야 한다"는 것이 고 기자의 진단이다. 요즘 초등학교 이상 자녀를 둔 가정에서 부모 자식간에 가장 큰 갈등거리는 TV보다는 사실 컴퓨터 사용이다. 모니터를 망치로 때려부수거나, 모뎀을 창밖에 집어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는 "전문가들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TV 시청보다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컴퓨터게임 특히 온라인게임의 중독성이 훨씬 강하다고 경고한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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