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서 반 이상이 영어 ‘수’를 맞았어요. ‘우’만 받아도 바보 소리를 들어요."
요즘 고교생들은 학교 시험을 볼 때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 가르쳐 주고 보는 시험이고 너무나 쉬운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전날 1시간만 훑어보면 100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다.
서울 A고는 이렇게 성적 뻥튀기를 하는 대표적인 학교. 지난해 7월 1학년 1학기 영어시험에서 이 학교 1학년 학생 490명 중 250명(51%)이 ‘수’, 99명(20.2%)이 ‘우’를 맞았다. 10명 중 7명이 영어 시험에서 80점 이상을 얻은 것이다. 이 때문에 ‘우’ 이상을 맞지 못한 학생은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거나 바보’라는 말을 들었다.
B고도 사정은 마찬가지. 같은 학기 1학년 국어 과목에서 학생 355명 중 185명(52.1%)이 ‘수’를, 96명(27%)이 ?議??받았다. 이 학교 역시 내신 뻥튀기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주변 학교 사이에서 만연했던 곳이다. C고의 경우 고교생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수학 과목에서 1학년 학생 549명 중 261명이 지난해 1학기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 80점 이상을 맞은 학생은 104명에 달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이들 고교 학생들의 실력이 뛰어나서 대부분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니다"라며 "교사와 학생 간의 암묵적인 공모에 의한 성적 뻥튀기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와 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성적 부풀리기는 보통 고교 교과목의 시험문제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쉬운 문제를 내거나 학교에서 채택한 참고서의 문제를 조금만 변형해 출제하는 수법으로 이뤄진다. 또 교사가 시험일 직전에 시험 문제가 대략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성적 부풀리기 기준이 그 동안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 학교에 대해 장학지도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에도 2차례에 걸쳐서 장학사 63명을 동원해 모든 고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심층장학을 실시하고, 위반 사례를 적발해 시정조치하겠다고 밝혔으나 각 학교로부터 학생들의 성적 분포 등 단순 통계자료만 받았을 뿐 성적 부풀리기를 한 것으로 드러난 해당 학교와 교사를 면담하거나 장학지도를 하지는 않았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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