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대학생이 되는 딸이 있습니다. 저희도 여느 집처럼 지난 해 수험생 딸의 수발을 드느라 무진 고생했음은 물론입니다. 여름휴가 때도 피서여행은 생각도 못했고, 일요일마다 고작 뒷동산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지난 해 봄 어느 일요일이 생각납니다. 딸의 대학합격을 발원하는 108배를 올리고자 집에서 멀지않은 사찰을 찾았습니다. 불공을 드리고 절 밖으로 나오니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면서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사찰 뒤쪽 산등성이를 오르노라니 쑥이 여기저기 빼곡하게 돋아 있더군요. 순간 아내는 등산을 포기하고는 곧바로 주저 앉아 쑥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뜯은 쑥은 어느새 한 다발이나 됐습니다.
"쑥을 이렇게 많이 갖다가 어디에 쓰려고 그래." 하지만 아내에 대한 푸념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금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된장을 풀어 끓인 감칠 맛 나는 쑥국은 제 입을 금세 귀에 가 걸리게 했기 때문이었지요. 남은 쑥은 잘 말려 목욕할 때 온수에 우려내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보습효과와 더불어 은은한 쑥 향기까지도 덤으로 얻어 여간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요즘 트렌드인 ’웰빙 라이프’가 따로 없었습니다. 예전 제가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께서 쑥을 뜯어다 쑥 버무리떡도 자주 만들어 주시곤 하셨지요. 평소 족욕(足浴)을 즐기는 터여서 며칠 전에도 한약 재료상에서 말린 쑥을 사 왔습니다. 쑥 향기는 언제 맡아도 참으로 향기롭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합니다. 문득 이 쑥향처럼 우리 사는 사회도 향기롭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늘상 아장아장 걷기만 할 것 같았던 딸 아이가 어느새 성큼 자라 벌써 여대생이 된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울러 세월처럼 빠른 건 다시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제 딸이 항상 감미롭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쑥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저 역시 언제나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쑥처럼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좋은 아빠이자, 늠름한 가장으로서의 길을 앞으로도 묵묵히 걸어갈 작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딸은 제 마음을 몰라줍니다.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곧바로 "푸하하하"하는 폭소와 함께 이런 응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빠한테서 쑥 향기가 난다구요? 쑥은 커녕 찌든 담배랑 술 냄새만 진동하는 분이 바로 아빠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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