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이뤄진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는 유가족의 소송제기가 발단이 되긴 했으나 현 참여정부의 리더십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참여정부로서는 문서공개를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공개되었어야 할 문서가 이제야 공개된 것은 크게 늦은감이 있으나 어쨌든 일부 베일에 싸였던 현대사의 의문들이 어느 정도 풀리게 됐다.
문서는 우선 한일협정이 불투명하고 부도덕적이며 부실했던 점을 밝히고 있어 상당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해서 한일 양국이 적절하게 대처한다면 양국간의 신뢰성 회복과 투명한 한일관계 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행정소송에 따라 할 수 없이 공개하는 방식이 됐지만, 어찌 됐든 이제 정부는 재협상 요구와 피해자들의 보상요구 등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신속히 표명해야 한다. 또한 관련문서 57권 가운데 불과 5권이 공개되었을 뿐이어서 의구심이 더 깊어진 측면도 있다. 한일협정의 의혹규명과 전모를 밝히기 위해 나머지 문서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공개해 양국의 비극적 과거를 시급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정부가 대일관계에서 적지않은 부담을 안게 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정부는 안보논리로 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려 했다. 협상 당시 우리 정부는 징병, 징용 피해자에 대해 피해보상금을 요구했으며, 개인청구권과 관련해서는 당시 외무부의 경우 개인이 갖고 있는 청구권이 정당하다면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그 때 일본측으로부터 청구권 자금 성격으로 받은 8억 달러 중 약 10%에 해당하는 자금을 대일 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에 사용했고 나머지는 경제개발에 투입했다. 이와 같이 당시 보상은 피해자 가운데서도 극소수에 한정된 데다, 건네진 자금이 경제재건에 쓰였다는 점에서 정부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6월 여야의원 117명이 발의한 일제 때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생활지원을 골자로 한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안’도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일본측이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 피해자 실태를 개별적으로 조사해 개별 보상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한국측은 배상금을 일괄적으로 받아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개인청구권이 차단됐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한일회담은 결국 구걸 외교였다는 점이 분명하게 확인됐다. 결국 협상이 굴욕적이었고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서공개를 계기로 일본정부도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 동안 일본측은 1990년부터 진행돼 온 북일 수교교섭에 대해 1965년 한일협정과 성격상 거의 동일하다며 관련 문서 공개는 북한에 일본의 협상전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은 한일협정이 일본의 책임에 대한 배상을 의미하는 청구권 협상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고 강변하면서도, 한국인 강제 징병, 징용 피해자의 개인보상 요구에 대해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종료됐다는 식의 이중성을 보여왔다.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범죄를 뉘우친다면 전후 50년이 지나도록 독일이 나치 관련자를 처벌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된 외국인에게 배상한 선례를 본받아야 한다. 일본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법적 책임이 해소됐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한 결단이야말로 일본이 새로운 동북아시대의 지도국으로서의 일본의 지위를 확보하기를 바랄 때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병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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