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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시대극 왜 논란인가 - 자의적 해석 소지 많아 ‘정치적 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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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시대극 왜 논란인가 - 자의적 해석 소지 많아 ‘정치적 민감’

입력
200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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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발전사를 현대와 삼성 두 재벌 총수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간 MBC ‘영웅시대’의 조기종영, 10·26 사건의 하루를 그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과 가수 심수봉의 심경고백, 3월 방영 예정인 MBC ‘제5공화국’에 대한 신군부 인사들의 반감표출.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들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면서 생존 인물들과 현재 진행형인 역사를 소재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감한 반응이 다시 한번 입증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고 당대 정치·경제적 상황을 그린 드라마와 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은?

◆ 당사자와 가족,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

실존인물의 행적을 통해 정치·경제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당사자와 가족,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영웅시대’보다 21년 앞서 한국재벌의 성장 비사와 정경유착을 정면으로 다룬 경제다큐드라마 MBC ‘야망의 25시’는 당시 폭발적 인기를 모았으나, 해당 기업의 항의로 22회 만에 종영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백담사행과 3당 통합장면으로 시작, 지도층의 탈세와 투기 등을 다룬 1991년 MBC ‘땅’도 50부작으로 기획했지만, 15회로 도중하차했다.

93년 ‘제3공화국’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과 좌익편력, 동거사실 등을 1부에 다뤄 5·16 쿠데타의 세 주역으로부터 항의서한을 받고 24회 만에 끝났다. 또 95년에는 신군부의 주역이었던 허화평씨가 10·26사건, 서울의 봄, 신군부 쿠데타 등을 정면으로 다룬 MBC ‘제4공화국’과 SBS ‘코리아 게이트’를 문제 삼아 방송사 경영진과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 그렇다면 ‘영웅시대’는 왜?

3월 1일 70부로 조기 종영하는 MBC ‘영웅시대’는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의 또 다른 한계를 노출했다. ‘영웅시대’는 정보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정치적 욕구가 제약을 받았던 군부독재시절 은폐된 정치·경제 비사를 공개하는 다큐 드라마의 형식을 포기했다. 사실(fact)에 충실한 구성 대신 개인사와 영웅담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틱한 요소를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박 전 대통령 등 주요 등장인물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작가 개인에 의해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았던 셈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찬반이 여전히 진행형이고, 또 그 평가가 민감한 정치현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왜곡’ ‘미화’라는 상반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기종영이 결정되자, 이번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여권 정치인들이 MBC와 이환경 작가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야망의 25시’ ‘제1공화국’ ‘제3공화국’ 등을 연출했던 고석만 EBS 사장은 "지금은 각양각색의 얘기들이 적극적으로 분출되고 정치적 견해가 분화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접근방식 등이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특히 ‘자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은 불가능한가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에 있어서 당사자나 가족의 반발과 편향성 시비에서 벗어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심각한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느냐이다. 이는 ‘영웅시대’가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나, ‘그 때 그사람들’이 10·26사건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블랙코미디로 만든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KBS가 ‘불멸의 이순신’ 후속으로 45년 이후부터 6·25 전쟁 이후까지를 다룬 시대극을 준비하면서 정치색을 최대한 빼고 그 시대를 산 보통사람들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3월 방영 예정인 ‘제5공화국’의 성공여부는 21세기 정치 드라마의 가능성을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제 4공화국’ ‘코리아 게이트’ ‘3김시대’ 등을 통해 이미 드라마화 됐고 김영삼 정부시절 재판과정을 통해 상세히 알려진 5공 세력의 이야기로 어떻게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게 관건이다. 또 방영 전부터 불거져 나오는 ‘편파성’ 시비에서 벗어나는 것도 큰 과제이다.

연출을 맡은 임태우 PD는 "한국사회가 전체적으로 탈(脫)정치화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과거 정치 드라마보다 한층 더 다큐멘터리 형식을 강화, 특정사건에 대한 판단을 시청자들이 하도록 해, 새로운 재미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현대사 영화 쏟아지지만 정통정치물은 아직 없어

올해 극장에도 실제 사건을 다룬 시대극이 줄을 잇는다. 4·3사건을 다룬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1950년대 미군의 노근리 학살을 다룬 ‘노근리 다리’, 80년대 언론 통폐합을 다룬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등.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도 2편이나 기획중에 있다.

이처럼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가 쏟아지고 있지만, TV 드라마와 달리 정치적 사건이나 실재인물에 파고드는 영화는 드물다. 할리우드의 ‘JFK’ ‘닉슨’처럼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영화는 권력자보다는 격동의 역사에 휩쓸려 상처 받은 소시민을 다룬다.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 등 현대사를 다룬 영화에서도 시선은 희생자에게 집중돼 있다. ‘그 때 그사람들’ 역시 10·26사건에 우연히 휩쓸린 중앙정보부 요원의 좌충우돌에 초점을 맞춘 블랙 코미디.

정통 정치영화가 흔치 않은 이유로 영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제작비 회수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방송산업과 달리 민감한 소재를 다룰 경우 발생하는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 정치 소재 영화를 받아 들일만큼 관객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효자동 이발사’를 제작한 청어람 김윤정 팀장은 "영화계가 정치를 다루는데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아직 불안정한 상태에서 심각한 정치영화를 받아들일 관객층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정치와 영화’의 저자 박종성 교수(서원대 정치외교학과)는 "현대사가 최근 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하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탈역사화한 스타 주인공만 뇌리에 남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朴대통령 役 단골 배우 이창환/ "인간 박정희도 좀 다뤘으면"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는 시대에 따라 주인공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그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한 사람이 바로 12년째 5편의 작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을 맡은 탤런트 이창환(54)씨다. 그는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 좌파 사상가인 사촌형에게 경도되는 청년 박정희를, ‘제4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격에 사망한 독재자 박정희 모습을, ‘연극 인간 박정희’에서는 민족의 가난과 싸워 이긴 지도자 박정희를 각각 연기했다.

그리고 3월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제5공화국’(극본 유정수 연출 임태우)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다시 박정희 대통령이 됐다. "이제까지 박 대통령 역을 하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누구도 어떤 정치적 사건 속의 그분 모습만을 다룰 뿐, 어릴 때부터 쭉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는 거죠."

"각하, 식사는 하셨습니까?". ‘제5공화국’의 실내 촬영이 있던 14일 MBC 분장실에서 군복차림으로 분장을 하고 있는 이씨에게 지나가던 탤런트 조형기씨가 경례를 붙이며 한마디 한다. "‘전원일기’만 출연할 때는 어딜 가나 ‘어 개똥 아빠 왔어’ 그랬는데 이젠 나이든 선배님들까지 ‘각하’ ‘각하’하고, 식당에 가면 ‘아 다시 살아오셨군요’ 이러면서 반기는 분들도 계시니까 종종 내가 진짜 대통령이 된 느낌이 들어요."

박 대통령 역은 그에게 운명이었다. 실제 그의 외모는 어딜 가나 ‘각하’ 대접을 받게끔 박 전 대통령과 빼 닮았다. 오죽하면 1999년 대구에서 공연한 연극 ‘인간 박정희’를 보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진짜 많이 닮았다"고 평했을까. "나 자신은 전엔 별로 닮았다고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저의 아버님 젊으셨을 때 군복 입고 찍은 사진 보면 정말 박 대통령하고 많이 닮으셨더라고요."

닮은 꼴 외모만으로 박정희 대통령 역을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박 대통령 육성이 녹음 된 테이프도 들어보고 자료나 책도 보고 주변 분들도 만나봤지만, 매번 할 때마다 힘들어요. 원래 그 양반이 무표정하고 위엄이 있잖아요. 그래 그렇게 연기하면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해요. 그렇다고 풀어진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없는 거 아니에요?" 악수하는 장면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박 대통령은 악수 할 때 꼭 손을 아래로 내밀었다고 하죠. 자기보다 키 큰 상대방이 허리를 굽힐 수 밖에 없도록 말이에요."

1976년 MBC 8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후 93년 ‘제3공화국’에서 처음 박 대통령 역을 맡아 연기자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창환씨. 그는 자신이 연기한 최고의 박 대통령 장면으로 "베트남 파병을 TV로 지켜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꼽았다. "연기 해보면 해볼수록 그분이 대단한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연기할 때 생가가 있는 구미에 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받은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진이 아직도 제 집에 걸려 있습니다."

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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