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불법체류자로 수도권 공장을 전전했던 나이지리아인 L(42)씨. 지난해 여름 경기 수원시 인근 영세 플라스틱 제조공장에 취직해 일하다 지난해 12월 피부염, 호흡곤란과 몸이 계속 아픈 이상징후를 느꼈다. 보호장비 없이 공업용 수지 제작공정에 투입돼 중금속인 ‘안티몬’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중독증상이 나타난 것. 안티몬에 중독될 경우 비소중독과 유사한 신경장애증상이 나타난다.
L씨는 불법체류자라 사측에 이렇다 할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지난 연말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L씨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데도 회사에서 안전작업복 등 아무런 보호장구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일을 계속하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산업재해의 사각지대?놓여 있다. 안전교육과 보호장비 등 안전대책에 무심한 업체들의 무신경과 당국의 관리소홀, 외국인 근로자들의 언어소통장애로 인해 안전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다.
실제로 2000년 1,197건이던 외국인 산재승인건수는 3년사이 2배 이상인 2,666건으로 늘어났다.
손가락이나 팔·다리가 잘리는 절단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이들 가운데는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산재적용을 받지 않고 치료도 부적절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02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 경기 용인시 소재 자동차부품공장인 J사에 취직한 파키스탄인 샤유카트 알리(28)씨는 지난해 10월 프레스 작업을 하던 중 왼쪽 손가락 2개가 절단됐다. 알리씨는 "보호장갑을 끼면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회사에서 보호장비를 치워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절단사고 전문치료병원인 경기 안산시 두손병원은 83병상 가운데 4분의 1이 외국인 환자로 채워질 정도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 2003년 반월시화공단 내 5인 이상 사업장 195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인 근로자 안전보건 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위험시설, 유해 화학물질 경고 표지판을 부착하지 않은 사업장이 전체의 31.8%(62곳), 정기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사업장이 42.6%(83곳)로 나타났다. 작업복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장, 개인보호구 미지급 사업장도 각각 30%(57곳), 13.4%(26개소)나 됐다.
안산지역의 대열보일러 노조의 박태순 위원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들이 영세기업이라 보호장비나 안전교육을 소홀한 경우가 많아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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