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1월18일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의 창업자 가스통 갈리마르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975년 졸(卒). 갈리마르는 1909년 창간된 문예지 ‘신프랑스잡지’(NRF)의 주역들인 앙드레 지드, 장 슐룀베르제 등과 함께 1911년 신프랑스잡지출판사를 세웠고, 이 출판사는 1919년 갈리마르서관(Librairie Gallimard)으로 이름을 바꿨다. 갈리마르서관은 1961년부터 갈리마르출판사(Editions Gallimard)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창립 이래 갈리마르출판사는 프랑스 문단의 가장 뛰어난 이름들을 껴안아 왔다. 초창기인 1920년대만 살펴도 지드, 기욤 아폴리네르,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장 콕토, 생존페르스, 마르탱뒤가르, 폴 발레리, 마르셀 프루스트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출판사의 ‘플레야드총서’에 끼이는 것은 대다?프랑스 문인들의 꿈이 되었다. 문학 분야에서 시작된 갈리마르의 출판은 ‘사상총서’ ‘인류’ 등의 시리즈를 통해 인문사회과학으로 확대됐고, ‘유대평론’ ‘마리안’ ‘현대’ ‘무한(無限)’ 같은 잡지들이 갈리마르 왕국 안에서 단행본들과 교감해 왔다. 독일 점령기에 NRF의 편집을 친독(親獨) 작가 드리외라로셸이 맡은 탓에 갈리마르출판사는 해방 이후 잠시 부역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카뮈, 엘뤼아르, 사르트르 같은 레지스탕스 작가들의 변호로 그 문제는 일단락됐다.
베르나르 프랑크라는 문학평론가는 그라세, 쇠유와 함께 갈리마르출판사를 프랑스 문학출판 시장의 삼두(三頭)로 꼽아 ‘갈리그라쇠유’라는 말을 만든 바 있는데, 명성에서나 문단 지배력에서 최고 두목은 갈리마르다. 갈리마르출판사는 창립 이래 가족 경영의 형태를 취해 왔다. 1975년 가스통 갈리마르가 작고하자 아들 클로드 갈리마르가 사장으로 취임했고, 1988년에는 손자 앙투안 갈리마르가 그 자리를 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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