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정말 추웠다. 아낙네들은 개울의 얼음을 깨고 고무장갑도 없이 손이 발갛게 얼도록 빨래를 했다. 빨랫줄의 빨래는 덕장의 명태처럼 딱딱하게 얼어 바람에 흔들리면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바람은 밤새 뒷산의 나무들을 훑으며 소나기 소리를 냈고, 두껍게 얼어붙은 강은 쩡쩡 얼음 터지는 소리를 냈다. 얼음이 얼마나 단단했던지 재목을 가득 실은 산판 트럭이 겨울 내내 강 위를 평지처럼 달렸다. 아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잣아 올린 펌프 물로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쩍쩍 들어붙었다.
■ 그래도 그땐 춥지 않았다. 아이들은 냇가에 불을 피워 두고 종일 얼음을 지쳤? 젖은 양말과 바지를 불에 쬐어 말리다 보면 늘 불티가 튀어 곳곳에 구멍이 났다. 틈틈이 산을 뒤져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 모으고, 묵은 그루터기를 캤다.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어 산토끼를 잡고, 밤에는 초가집 처마 틈새를 손전등으로 뒤져 참새를 잡았다. 해가 서산에 걸리면 아궁이마다 군불을 때고, 커다란 가마솥에 볏짚과 콩깍지, 쌀겨 등을 넣어 쇠죽을 끓였다. 밤이면 남자들은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고, 가마니와 멍석을 짰다. 더러 묵이나 두부를 걸고 화투나 윷놀이를 했다.
■ 소한(5일)을 지나 대한(20일)을 눈앞에 둔 요즘이 바로 그맘때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어 한동안 실종됐다던 올 겨울 추위가 소한 무렵부터 전국을 얼리고 있다. 일년 중 가장 추운 절기가 대한이라지만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처럼 피부로 느끼는 추위는 온도계의 수치와는 다르다. 얼음을 지치던 아이들처럼 즐거울 일이 있다면 추위는 얼마든지 잊을 수 있다. ‘대한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는 말도 당장의 추위보다 다가올 봄에 대한 기대를 앞세우는 마음가짐이다.
■ 그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추위는 혹독할수록 겨울답다. 더욱이 요즘 추위를 옛 추위에 견줄 바 아니다. 한강이 얼었다고 해도 피란민이 새까맣게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1·4 후퇴 당시에 비한다면 살얼음이 낀 정도다. 주거환경이나 의복의 따스함도 옛날과는 천양지차다. 그런데도 올 겨울에는 유난히 춥다고 웅크리는 사람들이 많다. 춥고 따스함이 모두 마음가짐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살림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게다. 나라가 나라다워 국민이 겨울다운 겨울을 즐길 수 있을 때는 언제쯤일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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