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제부터 생선뼈는 음식물 쓰레기라고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부 이모(28)씨는 16일 집들이를 마치고 밤 늦도록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올해 초 전격 시행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규정에 따라 먹다 남은 생선구이와 매운탕 등에서 일일이 생선뼈를 발라내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튿날 생선뼈를 담은 쓰레기 봉투 때문에 구청으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았다. 11일부로 바뀐 규정은 13, 14일 각 지자체로 하달됐으나 17일 현재까지 주민들은 정확한 규정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자고 나면 바뀌는 분류기준 = 환경부와 수도권 광역자치단체는 5일 발표한 15개 항목의 쓰레기 분리배출 기준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11일 2차 간담회를 갖고 4가지 항목으로 단순화된 분류기준을 만들어 각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했다. 그러나 이 기준은 권고용 가이드라인이어서 지자체마다 여전히 분류기준에 차이가 나는 데다 잦은 개정기준 변경에 홍보부족까지 겹쳐 주부들은 어떤 규정이 진짜 맞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다. 요리, 설거지, 쓰레기 분류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지침에 따르면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하는 음식물은 ▦소·돼지 등의 털과 뼈 ▦조개 등 패류 껍데기 ▦호두 등 견과류 껍데기와 복숭아 등 핵과류의 씨 ▦종이·헝겊 등으로 포장된 1회용 티백 등이다. 나머지는 모두 음식물 쓰레기다. 그러나 서울 성북구의 경우 환경부의 새 지침에도 불구하고 대구 참치 등 큰 생선뼈는 일반쓰레기로 분리하고, 나머지 작은 생선뼈는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하기로 한 기존 기준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구 관계자는 "기껏 복잡한 분리 규정들을 홍보해 놨더니 하루 아침에 내용이 바뀌어 주민항의가 빗발쳤다"며 "오히려 새 내용을 홍보하면 주민들이 더 헷갈려 할 것 같아 중점적으로 알려 왔던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과태료·기준도 지자체마다 제각각 = 해당 자치구의 특성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 분류기준은 물론 과태료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경동시장 등 한약상가가 많은 동대문구는 한약재를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할 경우 처리비용과 민원이 만만찮을 것으로 우려해 일반쓰레기로 처리하고 있지만, 중랑구는 한약 찌꺼기에서 물기만 25% 이하로 제거하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한다. 영등포구도 생선뼈는 음식물로 분류하지만 옥수수 양파 생강 등의 껍질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해 환경부 기준과 차이가 있다.
주부 인모(53)씨는 "이렇게 기준이 달라서 어디 맘 놓고 이사라도 가겠냐"며 "쓰레기를 배출하는 시민 입장이 아니라 수거하는 쪽의 편의만 앞세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분통이 터진다"고 불평했다.
혼합배출 과태료의 경우도 첫 적발시 5만원이고 두 번째는 10만원, 세 번째 20만원이지만, 서초 송파 성북구 등은 일정 기간 과태료 부과를 유예하고 홍보에만 주력, 일부 얌체족들의 쓰레기 ‘밀수출’도 속출하고 있다.
직장여성 장모(34)씨는 "따로 쓰레기 분류할 시간도 없고 해서 과태료를 매기지 않는 친정집으로 쓰레기를 싣고 간 적이 있다"며 "시민들을 나쁜 사람 만들지 않으려면 누구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바뀐 규정에 대한 홍보와 계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불합리한 부분은 차후 여론조사를 통해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신기해기자 shjnkh@hk.co.kr
■ "구분 어려울 땐 음식쓰레기로" 권장
-음식물 폐기물에 일반 쓰레기가 섞여 있을 경우 단속과 처벌은 어떻게 되는가.
"생활 폐기물 처리위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환경부의 지침은 1차는 5만원, 2차는 10만원, 3차 이상은 20만원이지만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정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과태료 부과금액이 다를 수 있다. 음식 쓰레기 분류기준에 따른 혼란으로 당분간은 홍보와 계도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지자체마다 음식 쓰레기 분류기준을 달리해 혼란이 많다. 왜 이렇게 한 것인가.
"지자체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음식 쓰레기 처리시설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사료 처리시설일 경우 음식 폐기물 분류기준이 까다롭고 퇴비나 소각시설은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다. 특히 축산농가가 많은 곳은 사료용 시설이 많아 분류기준이 엄격하고 소각시설이 많은 도시지역은 분류가 간편화 돼 있다. 사료용 처리시설은 자동분류나 수작업으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으나 완벽한 분리가 어렵다. 가축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이 불편을 참고 분류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
-일반가정에서 일반과 음식물쓰레기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배출을 어떻게 하면 단속대상이 되는가.
"가령 파뿌리에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경우에 일반 쓰레기인지 음식물 쓰레기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구분이 어려울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배출하든 단속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설처리과정에서 자동 또는 수작업을 통해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음식 쓰레기로 배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녹차 티백이나 나무 젓가락 같은 이물질은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이물질을 음식 쓰레기로 배출할 경우에는 단속대상이 된다."
-환경부는 일반과 음식 쓰레기의 구분을 동물사료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구분하라는 말을 하는데 사료나 퇴비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한약 찌꺼기를 일반 쓰레기로 분류한 이유는.
"일반가정에서 배출하는 한약 찌꺼기가 극히 소량이기 때문에 주민불편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일반 쓰레기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한약 찌꺼기를 다량 배출하는 한약상가가 있는 지자체의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음식 쓰레기로 분류할 수도 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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