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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서 공개/ 분노한 유족 "개인청구권 재협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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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서 공개/ 분노한 유족 "개인청구권 재협상하라"

입력
200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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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단체 반응

17일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자 피해단체들은 일제히 밀실협상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재협상을 촉구했다. 일부 단체는 일장기를 불태우는 등 일본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 회원 100여명은 이날 일본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1963년 당시 한일 양국의 청구권 협상이 밀실 야합을 통한 반인도적 협상이었음이 밝혀졌다며 양국 정부를 성토했다. 양순임 회장은 "희생자들은 배제한 채 경제협력금 명목으로 정부가 외자지원을 받은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한일 양국은 희생자들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희생자 청구권에 대해 재협상하라"고 주장했다.

또 유족회는 공개된 문서 내용을 검토한 뒤 ‘유해 미송환 유가족 정신적 피해배상 청구소송’ ‘미불임금 공탁금 및 후생연금 반환 청구 소송’ 등 가능한 소송을 모두 제기하기로 했다.

유족회 회원들은 ‘우리나라가 주권국이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라’ ‘일왕 가족 방한 결사 반대’ 등이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으며 일부 참가자들은 흰 소복을 입거나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오기도 했다. 일부 회원들은 일장기에 불 태우며 항의했으며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남편의 영정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하삼현(74) 할머니는 "남편이 18세 때 일본에 끌려가 죽도록 노역을 하고 돌아왔지만 보상금은 한푼도 없었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만 남았다"며 "이번 문서 공개가 보상을 받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공개된 내용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한일협정 과정에 대한 모든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외교통상부 앞에서도 항의 집회를 가졌다.

강제동원진상규명 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공개한 5건의 문서만으로 개인청구권의 진상을 알 수 없다"며 "외교부는 모든 문서를 하루 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한일협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다뤄지지 않은 것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 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한일 두 나라가 야합해 개인의 권리를 박탈한 한일협정은 희생자와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습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60·여·사진) 회장은 17일 한일협정문서가 공개되자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다. 그는 특히 "우리 정부는 희생자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 것은 물론, 일본이 갖고 있는 관련자료조차 제대로 요구하지 못했다"면서 "지난해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10명의 자국인 납북자 문제를 최대 의제로 삼았던 것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유족회가 199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보상 청구소송’에 대한 지난해 일본최고재판소가 기각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대한민국을 무시한 것으로 일본이 야만국이자 비인도적 집단임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태평양전쟁 패전국인 일본이 한반도 통일기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상태에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남북이 분단됐고, 일본 스스로 지난 52년에야 한국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기 때문에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양 회장은 일제 때 징용된 시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정부가 명부열람조차 거부하는 등 유가족들을 따돌리자 73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전신인 ‘태평양전쟁유족회’ 발기이사로 참여해 3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1975년 받은 보상금 30만원, 지금 받으면?

한일협정 문서공개에 따라 정부가 일부 보상을 실시한 1975년 당시의 돈 가치가 현재기준으로 어느 정도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일제때 징용·징병 피해자에 대한 개별 보상이 이뤄진다면 당시 정부가 제시한 보상기준을 현 시가로 환산해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75~77년 3년에 걸쳐 일제때 사망한 피해자 8,552명에게 1인당 30만1,056원 정도를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한국은행이 밝힌 소비자물가 기준에 따르면 2000년의 물가지수를 100으로 할 때 2005년과 75년의 물가지수는 각각 115.4%, 15% 정도이다. 7.7배 정도 오른 셈이다. 따라서 이를 단순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사망자는 올해 지급 기준으로 614만9,220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달리 현물가를 기준으로 할 때 흔히 적용하는 쌀값을 기준치로 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75년 서울지역에서 80㎏들이 쌀 한가마 소매가격은 2만257원이었고, 작년에는 21만7,044원이었다. 10.7배의 차이가 난다. 이를 근거로 정부가 75년 보상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지급한다면 사망자는 854만5,020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이정도 액수의 보상금을 지급하려 해도 피해자나 가족들이 수긍할지는 미지수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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