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진을 보고 푸근한 아줌마이려니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7일 서울 종로구 누상동 3층 작업실에서 만난 그림작가 한성옥(47)씨는 자유분방한 여장부였다. 최근 제46회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상(도서 부문)을 수상해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반열에 오른 한씨는 인왕산 자락이 코앞인 20여 평 작업실에서 정신없이 그림에 몰두해 있었다.
이 상은 1959년에 제정돼 매년 미국에서 나온 모든 부문의 일러스트레이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권위 있는 상이다. 그림책의 대가 모리스 센닥 등 이 분야의 숱한 거장들이 수상한 바 있다. 수상작은 지난해 미국 마셜 카벤디시 출판사에서 발행한 그림책 ‘Basho and the River Stones(바쇼와 강 돌)’. 보림출판사가 ‘시인과 요술 조약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한씨는 "글과 연결해서 책을 선정하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의 우수성만 보고 뽑는 상이어서 정말 기쁘다"며 껄껄 웃었다.
이 그림책은 일본 전통시(하이쿠)의 대가 바쇼(1644~94)와 여우를 등장시킨 ‘시인과 여우’의 후속편이다. 전편은 뉴욕 타임스 집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고 스미스소니언협회가 우수도서로 선정하는 등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토리를 쓴 미국 동화작가(팀 마이어스)가 한씨에게 그림을 부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씨는 이미 미 일러스트 업계에서 소문난 한국인이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와 뉴욕 패션기술전문학교(FIT)를 거쳐 시각예술학교(SVA)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러스트로 전공을 바꾼 것은 그림으로 대중에게 구체적 메시지를 전하고 소통하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유학 생활 중 어느 도서관에 가도 한국 동화가 없는 것을 보고 개탄스러웠습니다. 동포 2세 학생들이 고국 관련 프로젝트를 하려 해도 자료가 없다는 게 서글펐지요." 한씨는 93년 펭귄출판사에서 ‘황 부자와 금돼지’를 영어로 펴냈고, 이 내용은 캔자스주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3년 후 역시 펭귄에서 ‘콩쥐팥쥐’도 냈다.
"일러스트에서는 좋은 그림이란 없습니다. 적절한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요. 굳이 말하자면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는 통찰력을 가진 그림이 좋은 그림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고정된 스타일이 없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항상 새롭게 그립니다. 일러스트는 세상을 보는 제 삶의 흔적이지요."
회사원의 아내이자 중학생 아들의 어머니인 그는 "그림책이라는 게 영화나 연극 같은 별도의 매체로서 평가받고 자리잡는 그 날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글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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