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수사기관에 의한 자의적 인신 구속을 막기 위해 체포영장 발급 후 체포를 의무화하고 피의자에 대한 밤샘조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또 콤퓨터쏘프트웨어법, 상속법, 마약관리법 등을 제정해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법적 인프라도 갖췄다. 북한이 각종 법체제를 정비해 기초적인 법치의 틀을 마련하고 개혁개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돼 주목된다.
◆ 북한 법전 발간 의미 = 이날 공개된 대중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전’은 지난해 8월 발간된 1,000여쪽 분량의 각종 법률 모음집이다. 이 법전에는 사회주의 헌법, 형법 등을 비롯해 총 112개 법률이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상속법, 쏘프트웨어산업법, 장애자보호법 등 13개 법률이 새로 제정된 사실이 확인됐고 지난해 5월 대폭 손질된 형사소송법 내용도 실려 있다.
북한의 법전 발간은 기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나 노동당 정책 등을 통한 통치방식에서 법제화를 통한 통치가 더해지는 현상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호와 경제개방을 뒷받침하는 각종 법적 조치와 피의자 인권에 대한 보호의지를 담고 있어 북한의 변화상도 읽을 수 있다.
또 그 동안 북한은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법을 제정한 뒤 공표하는 절차를 생략했던 것에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대중용 법전 발간까지 하게 된 것도 달라진 북한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법체계 마련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김 위원장의 말 한 마디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북한 상황에서 법 제정은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실제 집행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평가도 있다.
◆ 법전의 주요 내용 = 우선 지난해 5월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눈에 띈다. 지난해 4월 형법 개정에 이어 체포영장 발급 의무화, 공개재판원칙 천명, 피의자의 적극적인 항변권 인정 등의 조항을 신설해 인권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2심제를 채택한 북한에서 피의자 인신구속은 우리의 판사 통제와 달리 검사가 총괄하며, 기소 전 단계에서는 예심원이 조사를 담당한다.
또 일반 형사범죄나 경제범죄를 제외한 정치사건은 국가안전보위부가 맡는 것도 특징적이다.
주택, 승용차, 화폐 등의 개인소유 재산에 대해 국가가 상속권을 보장한 상속법 제정 사실도 확인돼 북한식 사회주의 틀에서 소유 개념 인정의 폭이 확대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부모를 고의로 돌보지 않는 자녀가 상속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항도 눈에 띈다.
2003년 6월 제정된 콤퓨터쏘프트웨어법은 소프트웨어 저작권 등록제를 의무화했고, 지난해 6월 제정된 쏘프트웨어산업법은 인터넷망 서비스를 가능하도록 해 첨단산업 발전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금강산관광지구법과 개성공업지구법 등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대해 북한 중앙지도기관의 지도 규정을 삭제, 유연성을 드러냈다.
국토 보호를 위해 화장(火葬)을 장려하는 화장법, 변호사 관련 규정을 담은 변호사법, 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구체화한 장애자보호법 등도 북한 내부사회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장명봉 국민대 법학과 교수(북한법연구회 회장)는 "사회 경제변화에 맞춰 북한이 앞으로도 법제화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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