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았다. 대법원이 호주제 폐지의 대안으로 제시한 1인1적제에 대한 논란을 지켜 보면서, 또 방학 중에 결식 학생들에게 배달되던 부실 도시락 파문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2월 임시국회에서 호주제 폐지가 예상되는 가운데 대법원이 제시한 1인1적제는 호주 중심의 호적대신 개인별로 신분등록부를 만들자는 안이다. 신분등록부에는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의 신분정보가 기록된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 온 사람들은 1인1적제를 환영하지만,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붕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1인1적제로는 조부모가 누군지, 형제가 누군지, 삼촌이나 사촌이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래알 가족’ 추세가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가족과 친척이 울타리 역할을 하던 미풍양속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도 귀 기울일 만하다. 그러나 오늘의 가족해체 현실은 이미 법으로 꿰매어 두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부실 도시락 사태에 그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점심식사를 지원해야 하는 초중고생이 25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단순한 가난의 문제가 아니다.
옛날 같으면 아무리 가난해도 부모와 자녀가 흩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또 부모에게 문제가 생기면 친척들에게 의탁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삼촌 고모 이모들이 조카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가정이 깨지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세상에서 친척의 보살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아이들 뿐 아니라 사회가 돌봐야 하는 노인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의탁할 수 없다면 결국 사회가 그들을 돌보는 수 밖에 없다.
가족 이기주의, 혈연에 대한 동물적인 집착, 부모 자식간의 한없는 희생과 기대 등에서 벗어나 가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다. 핵가족화에서 더 나아가 한부모 가족이 늘어나고 독신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회공동체 의식과 연대가 날로 절실해지고 있다.
불량 도시락 파문으로 온 국민이 고통스런 며칠을 보냈다. 신문 방송에 도시락 사진이 나올 때마다 모두가 눈을 감아야 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 노인들, 가족의 울타리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서귀포에서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드러난 도시락에는 빵 1개, 단무지 3조각, 게맛살 4조각, 삶은 메추리알 5개, 튀김 2조각이 들어있다. 군산에서 공개된 도시락에는 삶은 메추리알 4개, 참치 김치볶음, 단무지 채와 건빵 5개가 들어있다. 강추위속에 그 도시락 사진들을 보니 위장이 얼어붙는 기분이다.
"제 자식이라면 이런 음식을 주겠느냐"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도시락 업자들을 악덕업자로 몰아서는 안 된다. 다른 지역 도시락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급식소를 갖춘 사회복지시설이나 배달을 맡아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어려울 것이다. 2,500원의 예산으로 도시락을 만들어서 골목골목 배달까지 해줘야 한다면 메뉴 선택부터 힘들 것이다.
지금은 비난하거나 문책할 때가 아니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울 때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지자체들이 도시락 배달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직 첫걸음이니 만큼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가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가족’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이다. 법적인 가족의 울타리가 약해지는 대신 사회적인 가족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저런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구나 가슴 아파하는 온 국민의 마음속에 ‘우리 가족’의 사랑이 싹트고 있다. 식권들고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는 식당주인들은 이미 ‘우리 가족’을 실천하고 있다.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건강하세요"라는 감사인사를 빈 도시락에 넣어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우리 사회의 희망이 있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새로운 가족의 연대를 짜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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