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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佛 정상회담 통역 최효선씨/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 등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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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佛 정상회담 통역 최효선씨/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 등 맡아

입력
2005.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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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를 처음 접한 게 20대 중반이었어요. 많이 늦었지요. 그러나 잘 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꾸준히 익히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지난 달 6일은 동시통역사 최효선(44)씨에게 뜻 깊은 날이었다. 파리 엘리제 궁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통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통역은 통역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역할. 그러기에 경쟁도 치열하다. "프랑스 외무부에서 회담 통역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불_한, 한-불 동시 통역이 가능한 통역사 중에 프랑스 외무부에서 직접 의뢰하는 국제회의 통역사는 최씨를 포함, 단 3명 정도란다. 통역사라고 해도 일부만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이 필요로 하는 수행 통역의 수준에 이른다. 더욱이 국제회의 통역은 선택된 극소수의 몫이다. 자격증은 따로 없다. 실적이 모든 걸 증명한다.

최씨는 1995년 미테랑 대통령 부인의 통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외규장각 문서반환 협상,고속철도(KTX)사업,98년 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지정 공식통역,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한-불간의 굵직한 일에서 통역을 맡았다.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여러 비화들을 접할 수 있는 것도 통역사의 재미다. 들은 것은 철저히 함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등학교 때 일어를 배운 그는 86년에 이화여대 대학원 특수교육과를 졸업할 때 까지 불어와는 인연이 없었다. 직장을 다니며 2년 여 동안 불어를 배운 뒤 89년 12명의 동기 중 유일하게 비전공자로 한국외대 동시통역대학원에 입학했다. 실력이 부쩍 늘기 시작한 건 90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제3대학 통역번역대학원(ESIT) 번역과를 다니면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보러 현지에 갔는데 북한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땄더군요. 그때 장내방송으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찾길래 자원한 게 시작이었어요."

최씨는 매일 신문, 방송을 보며 동시통역 훈련을 한다. 영어, 불어, 한국어 신문을 꼬박꼬박 독파하며 시사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한다. "회담 통역을 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열흘 이상은 일하기 힘들다.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떼일 정도로 고소득을 올리지만 프리랜서의 세계는 비정하다. 실수를 하거나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걸로 끝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는 얘기다. "통역사는 스스로 스타가 되려 해선 안되지요. 대화를 정확히 공정하게 전달하는 ‘서비스’정신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글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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