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산에는 호랑이 표범 곰 스라소니 같은 맹수들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가끔 호랑이나 표범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반달곰은 다시 이 땅에 살게 하려고 러시아에서 데려온 녀석을 지리산에 풀어놓고 살피고는 있지만, 이 친구들을 야생에서 만나기란 아득해졌다.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비밀’은 우리 곁에서 멀어진 이 녀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을 찾아 8년째 러시아 연해주와 캄차카 반도를 쏘다니고 있는 사진작가 최기순(42)씨가 때론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가 만난 야생동물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아찔한 모험을 들려준다. 글도 재미있지만 사진만 봐도 흥미진진하다.
눈밭에 우뚝 선 시베리아 호랑이의 위풍당당한 모습, 귀여워 보이지만 잔인한 사냥꾼 스라소니, 난폭한 무법자 불곰, 순한 눈망울을 지닌 노루, 털의 얼룩무늬가 유난히 아름다운 한국표범(일명 아무르표범), 재롱둥이 장난꾸러기 같은 반달가슴곰이 등장한다.
노루와 반달가슴곰을 집에서 기르다 숲에 놔준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푸근하다. 대자연 속에서 만난 시베리아 호랑이나 불곰 이야기는 침이 꼴깍 넘어가게 아슬아슬하다. 특히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기 위해 한겨울 숲속 나무 높이 위장텐트를 치고 기다리다가 식량이 떨어져서 밖으로 나왔을 때, 주변에 찍혀 있는 호랑이 발자국을 보고 당장이라도 호랑이가 쫓아올 것만 같아 죽을 힘을 다해 뛴 이야기며, 강에서 연어를 잡는 불곰을 찍으려고 바짝 다가갔다가 습격을 받은 대목을 읽을 때는 손에서 땀이 난다.
아이고,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일을 왜 하는 걸까. 야생동물은 워낙 감각이 예민해서 이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고 촬영을 하려면 위장텐트 속에서 꼼짝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기다려야 한단다. 누울 수도 없고 기지개도 켤 수 없는 그 좁은 공간, 더군다나 영하 30도의 한겨울 숲속, 동물만 가끔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혼자 외로움을 견디고 두려움과 싸우며 끈질기게 기다리는 건 정말 고역일 것이다. 용기가 없다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못할 일이다.
지은이가 애써 강조하려고 하는 점은 바로 이것,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이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숲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 당장은 이로울지 몰라도 결국은 그 피해가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거라고 말한다. 이 친구들이 살 수 있게 환경을 돌봐서 언젠가 이 녀석들이 한반도의 산야를 돌아다니는 날이 왔으면 하고, 어린이들이 그 날이 오도록 힘써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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