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속 지우개’ ‘이프 온리’ ‘노트북’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전국에서 많게는 256만 여명(‘내 머리 속 지우개’)에서 3만 여명(‘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관객을 불러들인 이들 영화는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둘째 제작사나 수입사의 기대를 뛰어넘는 조용한 ‘대박’을 터트렸다는 점이다. 따사롭고 순수한 이야기에 목마른 관객들의 가슴을 적신 것이 흥행에 성공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13일 개봉한 공정식 감독의 ‘키다리 아저씨’도 이들 영화처럼 맑은 순애보적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미국 여성 작가 J. 웹스터의 동화 ‘키다리 아저씨’를 얼개로 만든 점부터 20~30대 여성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영미(하지원)를 위해 몰래 대학 등록금을 대신 납부하고, 어려울 때마다 선물로 힘을 주는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는 관객들의 가슴 속 깊이 잠들어 있던 환상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 영화라는 다소 낯선 방식이 극의 초점을 흐리기도 하지만, 영미에 대한 준호(연정훈)의 숨겨진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을 알면 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준호의 기억이 조금씩 지워진다는 설정은 ‘내 머리 속 지우개’와 ‘노트북’을 연상시켜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진다. 코믹연기로 익숙한 신이와 정준하가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듯한 모습을 비춘 점도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사랑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공사장 청년과 건설사 사장 딸의 비현실적 사랑(‘내 머리 속 지우개’)이 갈채를 받았던 것처럼 ‘키다리 아저씨’의 흥행도 결국 관객들의 감성에 달려 있다 할 수 있다.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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