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단기 차익이나 시장교두보 확보차원에 머물렀던 외국 기업의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성격이 ‘국내시장 장악’쪽으로 급선회해 전 산업에 걸쳐 외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M&A 현황’자료에 따르면 2000년과 2001년 각각 9건과 13건에 불과했던 외국계 기업의 국내 기업에 대한 수평적 M&A가 2003년 32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상반기에도 17건에 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수평 M&A가 급증한 반면 2000년과 2001년 각각 100건과 83건에 달했던 혼합 M&A 건수는 2003년에는 63건에 머물렀고 지난해 상반기에도 41건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국내 시장 탐색을 위해 소규모로 진입했던 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토종 경쟁업체 인수로 몸집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본격적인 한국 시장공략에 나섰음을 뜻한다.실제로 외국 기업의 수평 M&A가 증가하면서 금융, 광고, 생활필수품, 종묘 등 전산업에 걸쳐 이들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생명보험의 경우 메트라이프와 AIG 등 외국 보험사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합작기업이나 지점 운영 등으로 한국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한 것에 만족했으나, 최근 메트라이프의 SK생명 인수가 결정되는 등 국내 중소 보험사 인수를 통해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M&A가 계속될 경우 현재 17.4% 수준인 외국계 보험사의 점유율이 내년에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씨티와 스탠다드차타드 등이 단기 차익을 남기고 한국에서 철수하는 투자펀드로부터 은행을 인수, 본격 공략채비를 서둘고 있는 은행시장에서도 97년말 4.2%였던 점유율이 이미 지난해 10월말에는 21.8%를 넘어섰다.
LG애드와 금강기획 등 업계 2, 3위 업체가 국내 진출 외국회사에 넘어간 광고업계도 99년 13.1%에 불과했던 외국계 기업의 점유율이 2002년 31.5%로 늘어난 데 이어 2003년에는 38%까지 상승했다.
이밖에도 2001년 영국계 세정제 회사 레킷 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한 샴푸, 비누 등 생필품 업계와 의약, 건전지, 종묘 등 주요 산업에서 국내 경쟁업체를 인수·합병한 외국기업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수평M&A란 공정위는 외국계 기업의 국내 기업 M&A를 수평 수직 혼합 등 3가지로 분류한다. ‘수평 M&A’는 이미 국내에 자회사 형태로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동종업계 국내 기업을 M&A하는 것을 뜻한다. ‘수직 M&A’는 정유와 석유화학처럼 상하연관 업종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이며, 국내 사업기반이 전무한 기업이 국내기업을 새로 인수할 경우에는 ‘혼합 M&A’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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