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는 시인 바이런의 일화 같은 성공 스토리는 오늘날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를 연출한 신인 감독 케빈 콘론이 그런 경우다. 할리우드 사람들과는 일면식도 없었던 콘론은 옛날 만화와 외계인이 나오는 텔레비전 시리즈와 유선방송을 통해 접한 고전 영화들의 이미지를 버무린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컴퓨터로 만들었다. 콘론은 이렇게 골방에 틀어박혀 영화를 만드는 것은 평생 해야 될 작업이라는 걸 깨닫고 절망했지만, 우연히 콘론의 단편을 접한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와 배우들이 대작 장편영화 기획에 참여하면서 삽시간에 콘론은 엄청난 예산이 드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자로 올라서게 됐다.
콘론의 어떤 상상력이 할리우드 실력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지는 완성된 영화 ‘월드 오브 투모로우’를 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고전 흑백 코미디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등장 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사와 필름 누아르 영화의 음산한 스타일을 재미의 기본으로 놓고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온갖 영화의 잔영들이 이 시대불명 SF 대작 영화의 화면에 아로새겨져 있다. 겨우 이것 뿐이야 라면 할 말 없지만 묘하게도 이 영화는 골동품 잡동사니의 전시장에 온 듯한 즐거움을 준다.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의 일급 스타들이 고풍스럽지만 화려한 스펙타클의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면 영화가 거의 절대적인 대중 오락이었던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현대적인 메트로폴리스와 공룡이 공존하는 이 퓨전 SF 영화는 익숙한 재료들을 갖고 제법 맛을 낸 성찬을 낸 포만감을 준다. 단, 밋밋한 영웅들과 쭉 일사천리로 나아가는 단조로운 플롯을 한 수 접어둔다면 말이다.
저우싱츠(周星馳)의 ‘쿵푸 허슬’은 광동어로 말장난을 하며 숱한 팬들을 포복절도시켰던 홍콩 희극배우가 이제 엄청난 허풍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뤘음을 증명하는 오락영화다.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여 이제까지의 저우싱츠 영화 중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쿵푸 허슬’은 말장난보다는 시각적 개그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고 골수 저우싱츠 팬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대다수 대중에게 살가운 판타지로 다가선다. 1940년대의 상하이를 무대로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무용담을 펼치는 이 희극적인 액션 영화는 매 장면마다 점입가경으로 단수가 높아지는 장대한 허풍과 난센스 유머로 흥이 넘친다. 어떤 짓을 해도 가능한 이 좌충우돌 소동극은 영화를 이렇게 찍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어이 없는 유머와 과장법을 구사하며 관객에게 해방감을 준다. 홍콩 영화계의 쿵푸 액션 전문가 집단과 광동어권 문화의 유머 감각이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논리 이전에 취향으로 접수해야 할 흥겨운 유머감각으로 여전히 관객의 얼을 빼놓고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숱한 영화들을 패러디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저우싱츠의 성숙한 재능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깃’은 그 동안 ‘꽃섬’ ‘거미숲’ 등으로 자의식적인 예술세계를 고집했던 송일곤 감독이 어깨에 힘을 빼고 적은 제작비로 빨리 찍은 저예산 디지털 영화다. 진지한 예술가 송일곤은 관념에 주눅 들리지 않고 그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이전 영화와는 다른 감흥을 던져준다. 영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