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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리 가보셨나요/ 안산 ‘국경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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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리 가보셨나요/ 안산 ‘국경없는 거리’

입력
2005.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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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집을 짓고, 한 집 두 집이 모여 거리를 이루는 시간만큼 삶의 눈물이 고이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 거리가 배타적인 문화를 뚫고 만들어졌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단 거리가 만들어지면 그곳은 그들의 안식처가 되고 행복을 키우는 모판이 된다. 12일 오후 찾아가본 경기 안산시 원곡본동 ‘국경 없는 거리’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아픔이 쌓여가는 거리였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을 키워가는 거리이기도 했다.

외벽에 국제전화용 전화기가 즐비하게 매달린 ‘중국식품’ 점. 한 재중동포가 종업원과 부지런히 정보를 교환하고 있駭? 어디서 종업원을 구하고, 어디가 집세가 싸다는 것부터 어느 식료품점이 음식재료가 좋고, 송금은 어디서 해야 하느냐는 것 등 시시콜콜 묻고 또 묻는다. 그 사이 중국 한족 부부가 찾아와 식료품과 전화카드를 사 가고 또 인도에서 온듯한 남자가 들어와 포장식품을 사갖고 간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7개월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이고 있어 외국인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이 거리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의 것이었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원곡본동 사무소까지 250c 구간이 ‘국경 없는 거리’다. 이 거리가 중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네팔 몽골 러시아 등 20여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인근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에 입주한 피혁 도금 등 이른바 3D 업종이 한국근로자 구인난에 시달리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나둘 들어오던 것이, 97년 IMF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잇단 업체들의 부도로 한국근로자들이 떠나면서 빈집이 늘자, 공단으로 가는 길목인데다 월 20만원 안팎의 값싼 주거지가 보장된 이곳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령’한 것이다.

원곡본동사무소가 추정하는 이 거리의 외국인은 현재 1만8,000∼2만명. 내국인 주민등록인구 1만8,000명을 넘어서는 수치다.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 정보를 교환하거나 회포를 풀려는 외국인들이 몰려 이 거리는 그야말로 해방구로 돌변한다.

파키스탄 전통요리집인 파라다이스의 압둘 살람씨는 "요즘은 단속 때문에 평일 낮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형편"이라며 "그러나 주말이 되면 단속반원들이 없기 때문에 손님들로 다시 활기를 띤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대신 붉은색으로 ‘외환송금중심’이라고 중국식으로 표기한 원곡동출장소 심재수(41) 소장은 "외국인들을 위해 평일은 8시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도 영업한다"면서 "휴일에는 송금고객은 물론 이곳을 약속장소로 활용하는 외국인들로 발디딜틈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외국인거리로 꼽히는 ‘국경 없는 거리’는 그러나 합당한 대접을 못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일에는 단속실적을 올리려는 서울 인천 경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물론, 멀리 청주에서까지 단속반원들이 몰려와 거리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네팔인 잔루 타파(33)씨는 "불황에다 단속이 심해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이곳 상인들은 급기야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면서 "지역 상권을 죽이는 무분별한 단속을 중단하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43) 목사는 "불법체류 노동자를 양산하는 제도적 맹점을 개선하지 않고 1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국제도시’를 위축시키는 것은 근시안적 행정"이라면서 "이곳은 우리나라의 인권과 포용력, 국제화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일뿐 아니라 훌륭한 교육 및 관광자원"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는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는 ‘국경 없는 거리’를 살리기 위해 개소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장알선 서비스까지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산=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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