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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실용주의 리더십

입력
2005.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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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실용주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기준 파문을 수습하면서 김우식 비서실장을 유임시킨 것이 논쟁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가 됐다. 언론들은 김 실장의 유임을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견지해 온 실용주의 노선을 유지하는 지표로 해석했다. 물론 청와대측이 공식적으로 실용주의를 표방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 전격방문, 경제 살리기에 다 걸기, 민생우선, 관용과 화합 강조 등 최근 노 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은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이 어제 연두기자회견에서 동반 성장을 통한 선진 한국을 강조한 것도 같은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여야 정당에서도 실용주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 연말 4대입법 처리 부진 책임을 놓고 극심한 내부갈등을 겪은 뒤 현재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서는 중도 실용주의세력이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엊그제 합리적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인사들을 주요 당직에 포진시켰다. 당내 이념과 노선 편차가 극심한 두 당이 극단을 배제하고 중도 실용주의로 통합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 앞서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의 극단적 이념대립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실용주의가 이렇게 유행처럼 번지는 한편으로 실용주의의 실체와 지향성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양지만을 지향하는 기회주의가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보수진영과의 채널 역할을 한다는 김우식 비서실장이 이기준 파문의 한 가운데 있었으면서도 유임된 것은 보수와의 타협이자 반개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개혁 목표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실용주의는 실체가 모호하지만 이념보다는 민생과 경제 살리기를 우선하는 현실적인 정책 노선 정도로 이해된다. 민생과 경제살리기, 혹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보수진영의 선호정책이 됐든, 진보진영의 구미에 맞는 정책이 됐든 가리지 않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정책선택의 기준은 정책의 실용성이며 국리민복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보수와 진보 사이를 가로지르는 유연성이 실용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을 외면한 이념 집착은 근본주의에 불과하며 우리 사회의 실용주의 노선의 부상은 그 같은 근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이 실질적으로 국리민복에 기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결여되면 실용주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좌와 우를 왔다갔다하는 기회주의가 되고 원칙 없는 편의주의가 되고 만다. 오른쪽 성향의 정책을 선택했을 때는 왼쪽 진영의 불만을, 왼쪽 성향의 정책을 선택하면 오른쪽 진영의 불만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실용주의는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력과 다양한 정체성을 아우르는 정치력이라는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리더십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용주의 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청와대와 여권이 실용주의 성공에 필수적인 판단력과 리더십을 갖췄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최근 이기준 파문은 이 물음에 회의를 품게 한다. 지금은 대학 개혁이 절실한 때라고 보고 도덕성보다는 여기에 필요한 능력을 중시하겠다는 판단은 지극히 실용주의적이었지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정은 연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종합적인 판단력과 리더십이 전제되지 않은 실용주의는 나라의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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