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68)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은 신비함의 그것에 가깝다. 이는 감동보다 앞선, ‘느낌’이고 ‘이미지’다. 단순히 그를 잘 알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문학과 미술 음악 영화를 넘나든 그의 두툼하고 별난 이력과, 앞선 예술적 감수성이 빚어낸 성과의 생명력에서 비롯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가 1969년에 써서 발표한 소설 ‘유자약전’이 한세대를 건너 선 지금까지도 감당하기 버거운 싱싱함을 유지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가 이 작품에 그림 몇 점을 얹어, 그림소설이라는 부제를 달아 다시 책(이다미디어 발행)을 낸 것을 빌미 삼아 11일 그를 만났다.
-이 소설은 어쩌면 요즘 세대의 눈높이에 맞지 않나 싶습니다. 거칠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요절한 여류화가 유자의 순정하고 광기어린 삶의 이야기쯤 될 텐데, 그것이 느낌과 이미지로 형상화돼있어 요즘 뜨는 환상성의 낯선 매력이 있거든요.
"발표 당시에 이 작품을 두고 내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했더니, 평단의 몇몇이 픽픽 웃어요. 상극관계인 환상과 리얼리즘을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거지요. 그게 유럽 그림판에서는 이미 1930,40년대부터 있던 경향인데 문학에서는 생소했거든요. 그림에서 배워서 그림 그리듯 이미지로 쓴 소설입니다. 이제는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도 더러 알고 영상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습니까. 광고를 통해 고래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도 자연스러워진 거죠."
가령, 잠이 든 유자를 3평, 10평 식의 서로 다른 면적의 공간에 잇달아 눕혀놓고 그 이미지를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대목을 보자. ‘…40평의 공간에서는 유자의 모습은 뿌연 안개로 가리어져 있다.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폭음이 들리고 모습이 드러나기도 전에 유자는 감쪽같이 없어져 버린다. 비행기란 무엇인가. 날파리의 후손의 그 후손의 기계적 후손이다.’ 현대문명에 대한 뜬금없는 냉소는 유자의 총체성을 구축해가는 이미지의 일부로 어렴풋이 느껴질 따름이다.
-다른 작품의 인물들보다 유달리 ‘유자’에 애착을 두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살아보니까 내 삶의 이상적인 반려 같아요. 인생의 쓴맛 단맛을 알면서도 소녀 같은 숫저움이 있고, 또 예술적 감수성으로 그림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극한의식도 있지요."
그 ‘유자’의 이미지가 젊은 날 작가 자신의 삶의 지향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55년 고1때 시로 ‘제1회 학원문학상’을 타면서 전국 여학생들의 팬레터를 받던 자칭 ‘전성기’의 회고담을 ‘숫접게’ 이어갔다.
그는 근년의 문학판이 못마땅한 듯했다.
"90년대 여성작가들이 가부장적 인습을 떨치고 주부들을 잔뜩 가출시켰지만 그것으로 끝이에요. 가출한 주부들은 아직 길 위에 서서 방황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역할을 주고 서야 할 자리를 제대로 짚어주는 작가가 아직 없어요." "문학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문학은 건재합니다. 다만 언어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영상세대, 인터넷세대를 문학 속으로 끌고 오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문학이 그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문학에 접목하려는 시도들은 바람직하지만 영화가 됐든 그림이 됐든 그것이 문학과 서로 삼투하려면 언어적 코드의 변환이 필수예요. 이미지만 잔뜩 널어놓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다는 거죠."
일전에 그는 2년 전 집 근처에 차린 카페 ‘마리안느’가 자리를 잡는 대로 슬슬 소설을 쓰겠다고 한 적이 있다. "당장 ‘문학동네’에서 내는 전집 12권 가운데 나머지 6권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게 대부분 쓰다 만 것들이어서 200~300매씩 메워야 해요. 그래도 봄에 문예지 두어 군데에 새 소설을 발표합니다."
거기다 도자기·접시 그림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책에 얹은 작품들과 함께 3월 중순께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서다. "더러 내가 쓰는 서체(‘길손체’)가 좋다고들 해서 지금은 폰트화하고 있어요. 상용한자 4,800자의 폰트작업도 해야 되고…" 그는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나이인데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큰 일"이라고 했지만, 일 벌이는 재미를 감춰두고 혼자 즐기자는 속셈인 듯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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